지난해 여름 밤에 가게 앞에 놔뒀던 파라솔을 도둑맞았다. 받침대는 무거웠던지 그냥 놔두고 파라솔만 빼갔다. 도둑이야 몇십 유로 받고 팔면 그만이겠지만 당한 입장에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제야 식료품 가게 아저씨의 당부가 생각났다. “화장실을 갈 때도 꼭 가게 문을 잠그고 가라. 너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너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들은 너의 가게에서 물건을 훔칠 거야.” 결국 파라솔에 체인을 묶지 않았던 차에 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한국 같으면 주변에 방범용 감시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찾아내 도둑을 잡을 텐데 아뿔싸 아무리 둘러봐도 감시 카메라가 없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포르투갈에서 방범용 감시 카메라 설치가 매우 엄격하다.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게 주된 이유다.
지난해 초 리스본 주재 중국대사관은 주민들의 항의로 대사관 주변 감시 카메라 3대를 폐쇄하거나 재배치한 일이 있었다. 주민들은 영사부 주변의 대형 감시 카메라들이 아파트 건물과 공공도로를 촬영할 수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포르투갈 외교부와 국가정보보호위원회는 중국대사관에 포르투갈의 감시카메라 운영 규정을 준수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중국대사관은 카메라 한 대는 철거하고 나머지 두 대는 더 이상 대사관 밖을 향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리스본 인구가 약 55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감시 카메라 242대가 설치돼도 인구 1000명당 감시 카메라는 0.44대에 불과하다. 그물망처럼 연결된 서울의 방범용 감시 카메라에 익숙한 나로서는 겨우 240여 대로 큰 도시의 범죄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이곳 경찰은 “비디오 감시 시스템을 강화함으로써 우범지대에서 이뤄지는 차량 내부 절도, 소매치기, 폭력, 강도 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이버보안 테크 기업 컴패리텍(Comparitech)의 집계에 따르면 서울은 1평방마일(2.59㎢)당 618.45대의 감시 카메라가 있는데, 이는 중국 도시를 제외하면 인도 델리에 이어 세계 2위다. 인구 1000명당 감시 카메라 수도 14.47대로 세계에서 8번째로 많다.
서울과 리스본의 상반된 감시 환경이 공공의 이익과 사생활 보호라는 두 가치 중 어디에 더 주안점을 둘 것인지 화두를 던진다. cheho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