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다중채무자가 역대 최대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최근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다중채무자 가계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다중채무자가 450만 명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지난해 1분기보다 4만 명이, 2분기보다 2만 명이 늘었다. 분기마다 2만 명씩 규칙적으로 불어나는 꼴이다.
전체 가계대출자(1983만 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7%로 사상 최대다. 다중채무자는 3개 이상 금융기관에 돈을 빌린 차주다. 가계대출자 4명 중 근 1명이 그런 처지라는 것은 빚 돌려막기에 여념이 없는 서민 가계가 많다는 뜻이다. 고금리 국면에서 그 수가 불어나고 비중도 커지는 것은 분명한 위험 신호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상환 능력이 취약한 점도 걱정이다. 118만 명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70%를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DSR은 대출자가 한 해 갚을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차주의 상환 부담을 한눈에 보여준다. 금융당국은 통상 DSR 70% 안팎이면 최소 생계비를 제외한 소득 대부분을 원리금 갚는 데 쓰는 것으로 간주한다. 한계 상황으로 본다는 뜻이다. DSR 70% 이상이 118만 명이란 숫자는 실로 암울한 통계자료일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은 DSR 100% 이상 다중채무자가 64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버는 돈보다 갚을 돈이 더 많은 사람들이다.
모든 채무자에게 힘이 될 뉴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금리인하 뉴스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초저금리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소폭의 인하도 신속히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 무엇보다 국내외적으로 통화가 너무 많이 풀려 인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하다는 점이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식료품 물가는 1년 전보다 6.0% 상승했다.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 불확실성까지 커지면서 물가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도 부정적인 요인이다.
가능성이 낮은 금융 여건에 섣부른 기대감을 품는 것보다 금융 위기는 부실 대출에서 비롯된다는 경험칙을 되새길 시점이다. 다중채무자, 취약 차주가 손실 흡수 능력이 취약한 제2금융권에 몰려 있는 만큼 방심은 금물이다.
금융당국은 선제적인 다중채무 위험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선심성 정책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옥석 가리기가 급하다.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는 차주 부담을 덜어 연착륙을 도울 비상처방전을 가다듬을 일이다. 자구 능력이 없는 차주에 대해서는 개인회생 절차 등의 퇴로를 열어야 한다. 금융기관 또한 충당금 확대 등으로 만약의 사태에 철저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분별력과 자제력이다. 다중채무 적색등이 켜졌는데도 국가적 파문을 줄일 플랜 B를 마련하는 대신 DSR 규제의 우회로나 뚫는 것은 어리석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하는 땜질 처방 아닌가. 당국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