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백지화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며 투쟁 의지를 드러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대 정원 증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4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관에서 간담회를 개최하고 전공의, 의대생을 비롯한 의료계 전체가 참여하는 의대 정원 확대 저지 집단행동의 구심점이 되겠다고 밝혔다.
김택우 비대위원장(강원도의사회장)은 “정부와 대화가 가능한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한다”라며 “의료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지 않는 한, 의료계의 투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정부는 6일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부터 2000명 증원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전국 의대 정원은 기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에 이필수 의협 전 회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전원 사퇴했으며, 9일 오후 긴급 온라인 회의에서 김택우 비대위원장이 선출됐다. 차기 의협회장 예비후보인 박인숙 전 국회의원과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가 각 분과를 이끌기로 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17일 제1차 비대위 회의를 열고 향후 투쟁 방안과 로드맵을 결정할 계획”이라며 “개원의뿐 아니라 전국 수련병원의 전공의 단체와 의대생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의하고 있으며, 법률 지원도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전국 16개 시도 의사회는 이미 이달 초부터 산발적인 집단행동을 개시했다. 각 지역에서 휴진과 집회를 진행하며 정부 정책에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15일에는 서울시의사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단체가 집회에 나선다.
조직강화위원을 맡은 박명하 회장은 “전국 시도의사회가 2월 초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집회를 추진하고 있으며, 15일은 서울시의사회를 필두로 대부분의 단체가 함께할 것”이라며 “저녁 7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진행할 계획이며, 단체 대표자와 회원 다수가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정부가 의료계와 소통을 거부해 상황을 악화했다며 비판했다. 지난해 초부터 28차례에 걸쳐 의료현안협의체를 진행했지만, 의대 정원 관련 논의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비대위의 주장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결정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역시 일방적 통보와 마찬가지로 강행했다고 비대위는 지적했다.
대외협력위원을 맡은 박인숙 전 의원은 “어떤 직종도 대학 정원을 한 번에 167%나 늘릴 수는 없다”라며 “정부가 전시 상황에 군인을 징집하는 것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급격하게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2000명을 증원한다는 결정은 근거가 없으며,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목적으로 나온 선전 도구에 불과하다”라고 꼬집었다.
이번 의료계 집단행동은 전공의들도 대거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12일 오후 9시 온라인으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정책에 관한 대응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후 구체적인 결론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일부 전공의들이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개인 계정을 통해 파업 의향을 밝히고 있어 긴장감이 지속되고 있다.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을 맡은 주수호 대표는 “2020년 이후 전공의 조직은 모두 와해돼 사라진 상황이었는데, 이번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120개 수련병원 전공의 협의회가 긴급히 모여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8개 기관으로 흩어져 있어 전공의 소통이 어려운 서울성모병원을 제외하면, 서울시 내 빅5 대학병원 중 4곳의 전공의들이 집단행동 동참 의사를 확인했다”라고 설명했다.
전공의는 병원에서 실질적인 환자 처치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인 만큼, 이들이 집단 사직이나 휴진에 나서면 의료 이용에 대규모 차질이 예상된다. 정부도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전공의 달래기에 나선 상황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14일 오전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 이후 브리핑에서 “정부는 젊은 의사의 근무 여건을 반드시 개선하겠다”라며 “전공의, 의대생 여러분들은 젊은 의사로서의 활력과 에너지를 학업과 수련, 의료 발전에 쏟아 주시기를 당부드린다”라고 근무를 지속할 것을 독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