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근의 슬금생] 이달 말 누적 손실액 1조 돌파...“배임 문제 터지면 책임은 누가 지나요”

입력 2024-02-17 08:00 수정 2024-02-2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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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은행권에 자율배상 압박...은행권은 '배임ㆍ과징금' 등 걸려있어 난색

금융은 어렵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실생활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돈을 벌고, 쓰고, 모으는 모든 금융활동은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 입니다. 삶을 보다 윤택하게 살고 싶다면 금융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금융이 가진 힘은 여기서 나옵니다. 힘들게 ‘존버’ 하는 세상에서 금융 치료가 약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입니다. 금융과 친해져야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슬기로운 금융 생활(슬금생)’에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 정책과 재테크 정보, 실생활에 필요한 돈 이야기 등을 소비자 시각에서 이해하기 쉽게 풀어 전달합니다. ‘슬금생’을 통해 금융 문맹인이 금융인싸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은행권이 누적 손실액 5000억 원이 넘은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을 두고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선제적인 자율배상을 권고하는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서면서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 입니다. 아직 불완전판매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명확한 기준 없이 자율배상을 내놓을 경우 추후 배임 문제와 함께 과징금까지 물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책임의 화살은 은행권을 넘어 금융당국에 까지 향하고 있습니다. 최근 홍콩 ELS 가입자들이 감사원에 금융당국의 감독 소홀 책임을 묻는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모양새입니다.

◇금감원 16일부터 홍콩 ELS 판매사 2차 조사...손실액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금융감독원은 16일부터 홍콩 H지수 ELS 판매사(은행 5곳·증권사 6곳)에 대해 2차 검사에 돌입했습니다. 1차 검사에서 회사별로 드러난 문제점들을 유형별로 체계화하고 이르면 이달 말 책임분담 기준안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부당권유 등 판매원칙 위반 유형별로 책임 분담 기준을 구체화 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LS는 개별주식이나 주가지수와 연계돼 이익이나 손실이 결정되는 파생상품입니다. 특정주식이나 주식지수의 성과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면서 투자자의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합니다.

홍콩 ELS는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를 말합니다. H지수는 홍콩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 중 50개 종목을 추려 산출합니다. H지수를 기초로 한 ELS는 통상 3년 뒤 만기가 됐을 때 가입 당시보다 H지수가 70% 아래로 떨어질 경우 하락률만큼 손실을 보는 구조입니다. 2021년 1~2월 당시 1만1000~1만2000선을 넘어섰던 H지수는 최근 5200~5300선까지 내려앉으면서 손실이 일파만파로 불어나고 있습니다.

H지수가 고점이었던 2021년 초 이후 발행된 3년 만기 ELS 상품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대규모 손실이 확정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연초 이후 지난 12일까지 홍콩 H지수 ELS의 손실 확정액은 5264억 원입니다. 이달 들어 H지수가 5223~5473선(종가기준)에 머물면서 매주 1000억 원 안팎의 손실이 새롭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만기 도래액은 앞으로 더 늘어납니다. 홍콩H ELS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은 2월 1조 6596억 원, 3월 1조 8170억 원에 이어 4월에는 2조 5553억 원 등이다. H지수가 현재 수준인 5300선을 유지한다면 이달 말 누적 손실액이 1조 원을 돌파하고, 4월에는 3조 원, 올해 상반기 중으로는 4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당국 자율배상안 압박에, 은행권 "배임 걸려있어 어렵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은행에게 조사 결과와 별개로 자율배상안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는 점입니다. 분쟁조정을 거치기 전에 은행이 자율적으로 배상에 나서 달라는 기대입니다.

앞서 지난 4일 이복현 금감원장도 "공적 절차와 별개로 금융회사들이 검사 결과에 따라 일부를 자율적으로 배상할 수 있는 절차를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원장은 다음날 2024년도 금감 업무계획 기자간담회에서 "불법과 합법을 떠나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부분이 있다면 자체적으로 배상을 하라는 것"이라며 "이쪽(피해고객)이 바라는 게 100이고, 저쪽(판매사)이 수용하는 게 50이라면 최소한 50이라도 먼저 (배상을)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재차 은행권 자율배상을 독려했습니다.

금융당국 수장이 연일 자율배상을 두고 압박하면서 은행권이 난처한 상황입니다.

정식절차 없이 무턱대고 자율배상을 할 경우 돌아올 후폭풍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판매라는 당국의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배상을 할 경우 주주, 채권자 등 제3자로부터 배임소지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 향후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따라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율배상을 해주면 불법판매를 인정하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은행이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습니다.

자본시장법상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투자자가 입은 손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후에 보전해 주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다만, 위법행위 여부가 불명확한 경우 사적화해의 수단으로 손실을 보상하는 행위를 예외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은행이 홍콩H지수 ELS 피해에 대해 배상에 나선다는 것은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이렇게 되면 은행이 금융소비자와 홍콩 ELS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소송으로 다투면 은행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주 배임 등과 관련한 문제가 걸려있는 만큼 은행이 먼저 배상안을 내놓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금감원의 검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향후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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