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42. 트럼프 재선 가능성…유럽의 고민

입력 2024-02-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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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일방주의-獨·佛 유럽주권 충돌
EU 회원국 통합강화 목소리 커져

2020년 11월 초 미국 대선 직후. 당시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대선에서 승리했다며 민주당이 선거를 조작했다고 계속해서 주장했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가운데 헝가리는 트럼프의 재선을 축하한다며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대다수의 EU 회원국들은 공개적인 발언을 극도로 삼갔다. 당시 헝가리의 트럼프 지지는 유독 눈에 띄었다. 오는 11월 5일 미 대선에서도 이런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은 원하지 않지만 트럼프의 재선에 대비 중이다.

오르반·트럼프, 국경통제ㆍ인종주의 비슷해

작년 12월 이 칼럼에서 “EU에서 ‘왕따’ 신세된 헝가리”를 상세하게 분석했다. 빅토르 오르반은 현재 EU 회원국 중 최장수 총리다. 2010년 집권 후 4번째 연임하며 비자유적 민주주의를 실행해 왔다.

그는 자신의 보수정당 피데스(Fidesz·헝가리시민동맹)가 선거에서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자마자 개헌을 단행해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로 제1당에 유리하게 선거법을 바꿨다. 또 판사 임명을 행정부의 통제 아래 둬 삼권분립을 훼손했다. 독립적인 미디어를 탄압해왔으며 EU로 밀려들어오는 이슬람 난민 신청자들을 거부했다. EU 회원국들이 경제력과 인구에 비례해 난민 신청자들을 분담하자고 결정했는데 이마저 단칼에 거절했다.

오르반의 이런 정책은 트럼프의 국경통제 및 인종주의와 거의 동일하다. 트럼프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르반을 자기 편이라고 추켜세웠다. 대표적인 친트럼프 매체가 미국의 폭스뉴스다. 이 방송의 간판 앵커였던 터커 칼슨은 종종 헝가리를 방문해 미국이 본받아야 할 나라로 꼽았다.

이러니 오르반이 트럼프의 재선을 기대하는 게 당연하다. 지난해 말 폴란드에서 친유럽적인 정권이 들어선 후 왕따 신세가 된 헝가리에 우군이 생겼다. 슬로바키아의 로버트 피초 총리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그는 지난달 중순 헝가리를 공식 방문했다.

오르반과 피초는 “양국의 이익은 99% 일치한다”며 긴밀한 관계를 과시했다. 실제로 피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 단교됐던 러시아 및 벨라루스와의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하지만 두 나라는 EU의 소국으로 경제와 외교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이 미미하다. 기껏해야 유럽에서 ‘소음’을 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럽통합을 이끌어왔던 독일과 프랑스의 대비책이다.

“우리가 타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시대는 어느 정도 지났다. 우리 유럽인들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처리해야 한다. 물론 미국 및 영국과 우의를 다져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017년 5월 말 공개석상에서 한 말이다. 트럼프는 그해 1월, 대통령이 된 후 메르켈 정부를 드러내놓고 무시하곤 했다. 이를 몸소 겪은 메르켈은 미국의 일방주의 및 보호무역 등에 맞서 유럽이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콘웨이에서 열린 '투표 참여' 집회에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콘웨이에서 열린 '투표 참여' 집회에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美에 안보의존 탈피 움직임 커져

독일 외교정책의 기조는 미국 및 프랑스와의 관계 강화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의 기후변화 무시와 보호무역 우선으로 중요한 한 축과 충돌하다보니 독일은 프랑스, 유럽과의 관계 강화를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과 함께 유럽통합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 온 프랑스에도 좋은 기회였다. 프랑스는 초강대국 미국을 비판하며 독립적인 외교정책을 중시해온 드골주의를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메르켈의 발언에 호응해 ‘유럽의 주권’ 강화를 설파했다. 미국에 의존해 온 안보에서도 점차 유럽이 더 큰 역할을 하고, 기술이나 경제에서는 유럽이 미국이나 중국 의존을 벗어나야 한다고 봤다.

프랑스와 독일의 이런 발언에 EU 회원국 상당수가 동의했지만 문제는 실천이었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독일은 유럽의 나토회원국 가운데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GDP의 1.33%로 매우 낮았다. 나토 동맹국이 합의한 2%에 턱없이 부족했다. 러시아의 침략이 있고 나서야 독일은 5년간 1000억 유로, 약 140조 원을 국방비에 투자, 2% 공약을 지키겠다고 밝혔고 실행 중이다.

두 나라는 또 지난해부터 트럼프 캠프와도 접촉을 유지해왔다. 독일의 경우 지난해 가을부터 정부 차원에서 트럼프 캠프와 만났다. 프랑스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유사한 접촉을 계속해 왔다고 알려졌다.

2016년 11월 초 트럼프가 여론조사와 달리 미 대통령에 당선되자 독일과 프랑스는 거의 패닉에 빠졌다. 두 나라는 당시 트럼프 캠프와 거의 접촉하지 못했었고 전혀 준비되지 않았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게 프랑스와 독일은 물론 상당수 EU 회원국의 입장이다.

2차대전 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통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철천지 원수였던 프랑스와 독일이 화해를 하고 독일을 제어하기 위해 유럽의 기구들이 국가 정책권한을 이양받아 통합을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압도적인 역외세력 미국의 역할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다. 공산국가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고 잠재적인 독일의 군국주의를 제어하기 위해 미국은 수십 만의 군을 유럽에 주둔시키고 유럽통합을 적극 지지해왔다.

독·불 등 트럼프캠프와 물밑접촉

평화프로젝트로 유럽통합이 성공한 것은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이고 미국의 역할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기후위기 대응을 무시할 터이고, 보호무역도 더 강화할 것이 뻔하다. 트럼프는 지난 11일 선거 유세 중 나토동맹국 가운데 2%를 준수하지 않는 나라를 미국이 지켜주지 않을 것이고 러시아에 침략을 부추길 것이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 막말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재선 시 미국과 EU 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EU는 통합을 강화해야만 미국의 일방주의를 조금이라도 견제하고 국제정치경제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수사이고 현실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따라서 트럼프 재선에 대비하는 유럽의 움직임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지켜보자.

대구대 교수(국제정치학)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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