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자막 제공은 일부 이용자 뿐아니라 모든 이용자들에게 유익할 수 있어서 ‘모두를 위한 디자인’, 즉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볼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1974년 휠체어를 타는 장애당사자이자 건축가인 로널드 메이스가 WHO(세계보건기구)에 제출한 ‘배리어프리디자인 보고서’에서 처음 소개한 후 건축뿐 아니라 다양한 제품, 서비스 등으로 확대된 개념이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뿐 아니라 누구나 타서 수직 이동을 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도, 타이핑이 불편한 사람이 음성으로 문자 전송이 가능한 스마트폰 기능도 모두 유니버설 디자인의 범주에 속한다. 유니버설디자인은 ‘장애인이 편하면 모두가 편리하다’는 슬로건으로 이해되면서 확산됐다. 그런데 이를 적용할 때 문제점이 불거지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 유니버설디자인 바람을 타고 ‘다목적 화장실’이 유행처럼 설치됐다. ‘가족화장실’ 등의 이름으로 영유아 동반해 이용 가능한 화장실을 만들자는 취지는 좋다. 그런데 이 화장실을 설치하면서 문제점이 대두됐다. 기존 장애인 화장실을 개조해 가족화장실을 만드는 곳이 많았던 것이다. 가뜩이나 화장실 숫자가 적어 밖에서 목말라도 물도 안 마시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에게는 난감한 일이었다. 휠체어가 들어가려면 넓은 공간이 필수적이라 다른 화장실을 이용 못 하는 휠체어 이용자들이 영유아 동반자들과 화장실 이용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존 장애인 화장실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기저귀 교환대, 유아소변기, 유아용 시트 등을 추가로 욱여놓아서 화장실에서 휠체어를 돌리거나 변기로 옮겨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아예 나오지 않는 화장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하철에 휠체어, 유아차 이용자를 위해 좌석을 떼어놓은 ‘휠체어 구역’이 있다. 휠체어 이용자가 없을 때는 다른 사람도 기대어 설 수 있으니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그런데 여기 캐리어나 자전거를 세워두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승객들이 있다. 일부 열차 휠체어칸에는 아예 휠체어와 캐리어가 나란히 픽토그램으로 표기되어 승객들이 ‘캐리어 두고 나는 다른데 가서 앉아도 되나보다’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례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했지만 최초 설계 또는 디자인을 알리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은 사례다. 화장실의 경우 영유아 동반층까지 고려한다면 아예 새로운 화장실을 만들었어야 한다. 백번 양보해 기존 화장실을 개조하더라도 개조 후 휠체어 이용자들이 불편해진다면 유니버설 디자인 취지에서 벗어난다.
지하철 휠체어 구역도 잘 모르는 일반 시민들이 물건을 거치해 놓고 다른 곳에 가도 괜찮은 것처럼 오해하게 디자인이 되어 있다면 휠체어나 유아차가 통로에서 불안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안전상 문제점을 야기한다. 이 두 공간은 각각 ‘오줌권’과 ‘이동권’이라는 기본권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이런 공간에서의 기본권을 침해당한 경험이 있는 서비스 소비자들은 그 이후에도 화장실이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나 단체의 공간 기획자들께 부탁드린다. 애초에 서비스 소비약자를 위한 공간 디자인을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바꾸어야 한다면 서비스 사용자끼리의 분쟁이나 오해가 없도록 섬세하게 기획돼야 한다. 당사자에게 기획 전 사전에 물어보는 게 가장 좋다. 독자들에게도 당부드린다. 엘리베이터에서는 엘리베이터 외 다른 이동수단이 없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타야 한다. 휠체어나 유아차에게 양보해주길 바란다.
지하철 휠체어칸은 비워놔야 한다. 거기에 캐리어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하더라도 캐리어를 거치해 놓고 다른 곳에 가버리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그 구역에 서있게 됐다면 역을 지날 때마다 혹시 휠체어나 유아차가 타지 않는지 주시하고 양보해 주길 바란다. 가족화장실만 있고 장애인화장실은 없는 공공기관을 보게 됐다면 ‘안전신문고’ 같은 신고 어플로 “화장실이 더 필요하다”고 신고해 주길 바란다. 이렇게 모든 시민이 진정한 유니버설 디자인 확산에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