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4선 도전하는 ‘르완다의 박정희’

입력 2024-06-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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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호 국제경제부장

내전끝내고 화합·사회안정 이뤄내
새마을운동 도입해 산업화에 박차
내달 대선…阿 시장확대 발판 삼길

20년 전 미국에서 개봉한 ‘호텔 르완다’라는 영화가 있다. 1994년 아프리카 빈국 르완다에서 내전이 벌어질 때 다수를 차지한 후투족이 투치족을 학살하는 와중에 1000명 이상의 난민을 보호한 호텔 지배인을 다룬 영화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비극에 빠졌던 르완다가 최근 다른 의미로 화제에 오르고 있다. 밀려드는 난민으로 골머리를 앓던 유럽 각국이 르완다에 돈을 지급하고 난민을 보내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영국은 당장 내달부터 난민을 르완다로 보낼 계획이다. 덴마크와 독일, 오스트리아도 비슷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외신의 초점은 르완다로 난민을 강제 추방하려는 유럽 나라들에 대한 비판에 맞춰져 있지만, 이들이 낙점한 국가가 르완다인 이유가 무엇인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유럽 국가들이 난민을 보내려는 국가를 단순히 선정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피차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더라도 최대한 난민이 잘 적응하고 생활할 만한 나라를 고르지 않았을까.

실제로 우리의 뇌리에 학살의 기억이 박혀있지만, 르완다는 그 이후 놀랄 만큼 발전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권력을 쥐고 있는 폴 카가메 대통령이 있다.

카가메 대통령은 소수민족인 투치족 출신이지만, 후투족에 대한 보복을 금지하고 용서와 화해로 사회를 안정시켰다. 2000년 이후 연평균 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한국과 싱가포르의 과거를 연상케 하는 기적을 연출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율도 90%가 넘는다.

지금까지 3선에 성공했으며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개헌에도 성공했다. 내달 15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 최장 2034년까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당연히 다른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적 제거, 인권 탄압 등의 의혹과 비판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카가메 대통령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사람은 자연스럽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심지어 카가메 대통령도 자신의 롤모델은 박정희였으며 새마을 운동도 도입했다고 종종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르완다의 박정희’라는 별명이 카가메 대통령과 르완다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아프리카 대륙이 경제적으로 유망하고 자원 확보 측면에서 우리나라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들 공감하고 있지만, 르완다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이미지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이 여전히 아프리카 하면 학살과 기아, 온갖 자연재해 등만 떠올린다. 이는 르완다를 포함해 여러 아프리카 국가의 현 상황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르완다의 박정희’를 자처하는 카가메 대통령은 서비스산업과 첨단 IT산업에 방점을 찍고 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도 IT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을 통해 산업화 시대 뒤처졌던 경제 발전을 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행 인프라가 부족한 고질적인 문제를 적극적인 모바일 뱅킹 채택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다.

즉 우리가 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려면 카가메 대통령을 언제까지나 ‘르완다의 박정희’라고 피상적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대신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등 우리가 강점을 지닌 최첨단 기술을 아프리카 시장에 펼칠 수 있는 파트너로 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도 기업과 정부가 이렇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내달 르완다 대선이 아프리카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 시장에 진출할 돌파구를 모색할 좋은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baejh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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