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론 친야단체 내세워 방송장악
공영방송 정치예속 가속화 우려돼
공영방송 거버넌스를 개편하는 야당의 이른바 ‘방송3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야당의 법안 추진 명분은 KBS, MBC, EBS 이사회 구성에 있어 정치권의 지분을 크게 낮추는 대신, 여러 영역의 인사들로 구성해 이른바 시민 대표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개정 법안에 따르면 방송 관련 단체와 학회, 시청자위원회 등에서 추천한 21명으로 이사회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외형적으로는 이사 구성이 다양해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추천기관이 대부분 방송이나 언론 관련 단체들이라는 점이다. 공영방송 이사회가 다양한 영역의 이익을 반영하도록 한다는 이른바 ‘국민 대표성’과는 거리가 멀다. 도리어 ‘방송인의 방송인을 위한 방송인에 의한 공영방송’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하다. 단체들의 성향과 활동 이력들을 보면 더욱 문제가 많다. 거의 다 친야권 정치 성향을 보여 온 단체들 일색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제되는 것은 지금도 공영방송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민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조와 구성원이나 활동 내용에서 중복되는 단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3개 언론·방송 관련 학회가 각 2명씩 6명의 이사를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방송·언론 관련 학회들이 보여준 성향이나 활동을 보면 야당이나 언론노조에 매우 친화적인 것이 사실이다.
굳이 성격을 문제 삼지 않더라도, 지구상에 어떤 나라가 공영방송 이사를 학계에서 3분의 1 가까이 추천하는지 솔직히 들어본 적조차 없다. 더구나 3개 학회 회원 구성 또한 사실상 크게 중복되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한마디로 ‘비례의 원칙’에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회 추천 비중을 과도하게 늘린 것은 이 학회들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엄격하게 말해 이 추천 단체들이 어떤 국민 대표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어떤 국민 합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야당이 독자적으로 판단한 대표성이라면, 그것은 결국 야당이 인정하는 정파성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야당의 방송3법 개정안은 야당과 언론노조가 공영방송 경영권을 영구히 장악하기 위한 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근본 이유다.
야당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 경영권이 교체되는 ‘정치적 병행성(political parallelism)’에서 탈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더 철저한 친야권 공영방송 체제를 영원히 구축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공영방송의 정치성을 배제하기 위해 더욱 정치적으로 만들겠다는 자기 모순적 법안인 셈이다.
집권 중인 2021년에 처음 발의했지만 오래 묻어두었다가, 대선에서 패배하고 정권이 바뀐 작년에야 법 개정을 시도한 것도 법안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더욱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폐기되었던 법안을 수정해 시급하게 다시 추진하는 의도는 더 불순하다. 그것은 공영방송 이사진 개편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라 이사진을 개편하게 되면, 공영방송 경영권이 집권 여당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을 압박한 것도 결국은 차기 공영방송 선임 절차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국민 대표성이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정치 성향을 가진 단체들을 앞세워 공영방송을 정치적으로 영구 장악하려는 것이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양의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다는 말이 딱 맞는다. 세계적으로 공영방송은 급감하는 시청률과 영향력, 경영 압박으로 존폐위기에 몰려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을 정치적 전리품이나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너무나 퇴행적이다. 정치와 언론 수준은 비례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