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입법 폭주→거부권’ 쳇바퀴, 민생 등진 한국 정치

입력 2024-08-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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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들어 두 달 넘게 신물 나는 대결 정치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어제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민생회복지원금지급 특별조치법)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을 ‘현금살포법’과 ‘불법파업조장법’으로 규정하고 “우리 경제를 망치는 나쁜 법”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1호 당론으로 발의한 25만 원 지원법은 여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도 2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노란봉투법도 오늘 막을 올리는 8월 임시국회에서 우격다짐으로 처리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앞서 7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방송 4법과 함께 6개 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방침이다. 이후의 전개도 뻔하다. 야당은 재표결을 추진해 그 과정에서 또 충돌이 빚어질 것이다. 야당의 법안 상정과 단독처리, 여당의 필리버스터, 대통령 거부권 행사, 재표결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어지고 있다.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공회전이 언제 멈출지도 알 수 없다.

특검·탄핵의 소모적 충돌도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어제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 후 “윤 대통령이 언론 자유를 탄압하고 방송을 장악하고 민주주의를 짓밟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네 번째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시도를 정당화하려는 강변이다.

윤 정부 출범 이후 야당은 지금까지 18번의 탄핵안을 발의했다. 이 중 7건이 22대 국회에서 이뤄졌다. 최근에는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 관련 특별검사법안을 발의했다. 22대 9번째 특검안이다. 채상병 순직 은폐 의혹 등 4개 국정조사 추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폭주 기관차가 따로 없다.

야당의 탄핵·특검안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폐기될 확률이 거의 100%에 가깝다. 야당도 모를 리 없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정략적 꼼수가 아니냐는 의혹만 커지고 있다. 필리버스터 외에 여당 본연의 역할과 기능이 보이지 않는 점도 혀를 차게 만든다. 민심과 거꾸로 가는 4류, 5류 국회가 필요한지, 입법부 유지 비용을 납세자들이 감당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부호가 시커멓게 찍힐 수밖에 없다.

국민 분열을 심화시키는 역기능도 심각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950명을 대상으로 벌인 ‘사회갈등과 사회통합 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우리나라 사회 통합도(10점 만점)는 평균 4.2점으로 나타났다. 2021년 4.59점에서 2022년 4.31점으로 하락했고 지난해 다시 떨어졌다. 엉터리 정치만 없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정치 본연의 책무인 민생이 뒷전으로 밀려난 게 무엇보다 뼈아프다. 22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민생·경제법안이 처리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연금·노동·교육·의료 개혁부터 K-칩스법, 고준위방폐장법, 전력망법 등 국가적 과제가 수두룩하다. 가계대출, 집값 불안 등 타들어 가고 있는 뇌관도 한두 개가 아니다. 여야가 국민 지지를 원한다면 지금까지 달린 방향과 정반대로 가야 한다. 길 찾기가 그리 어려울 까닭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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