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민중을 이끌려는 트럼프’

입력 2024-08-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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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택 연필뮤지엄 관장

21세기 미국에서 혁명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주인공은 한 번 더 대통령을 하겠다고 국민 앞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다. 귀에서부터 입술 주위까지 붉은 핏자국으로 얼룩진 트럼프, 파란 하늘과 휘날리는 성조기를 배경으로 불끈 쥔 주먹을 치켜든 채, 무어라 외치고 있다. 주변 인물들의 황망한 모습에서도 긴장감이 배어난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에번 부치가 포착한 역사적 순간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이 장면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e guidant le peuple)’를 정확히 재현하여 ‘민중을 이끄는 자유(트럼프)’를 연상시키게끔 한다.

들라크루아는 19세기 낭만주의 예술의 중심 화가로 그의 대표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가 루브르에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프랑스 혁명(1789)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히는 그로부터 40여 년 후, 왕정복고에 반대하여 봉기한 시민들이 시가전 끝에 부르봉왕가를 무너뜨리고 루이필리프를 국왕으로 맞이한 7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그림의 부제도 ‘1830년 7월 28일’이다.

이후 작품 속의 ‘자유(의 여신)’는 200여 년 동안 프랑스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공화당의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침 트럼프도 공화당이다.

특정 이미지의 시현은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 이오지마의 성조기 사진이 전형적인 사례다. 1945년 미군은 태평양의 이오지마섬에서 악전고투 끝에 스리바치산 정상에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여러 명의 군인이 함께 바람에 펄럭이는 성조기를 일으켜 세우는 모습이다.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다는 미국인의 자존심을 한껏 고무시켰다. 총격으로 유혈이 낭자하는 트럼프의 사진도 또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암살 시도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 있는 지도자, 미국을 구하는 남신(男神)! 그가 자유의 여신만큼의 역할을 할지는 의문이지만 어쨌거나 지지층에게는 대선에서 써먹을 수 있는 딱 좋은 사진이다.

포토저널리즘은 ‘선전(propaganda)’으로서 극적인 이미지를 통해 여론을 좌우할 수 있다. 보도사진이 효과적인 선전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은 이미지에 쉽게 설득되는 현대사회의 특성 때문이다. 진실성과 신뢰성이 생명인 보도사진이 디지털 시대를 맞아 사진가와 편집자의 의지에 따라 왜곡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으며, 그 목적은 특정집단의 이익 실현을 위한 것이다.

객관적인 기록보다 의미 부여에 관심을 기울이면 보도사진은 더 이상 정의롭지 않다. 연출하지도 꾸미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 사진이다. 보도사진이야말로 진실을 추구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예쁘게 찍어주세요”라고 한다. 그러면 “있는 그대로 나옵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싫든 좋든 있는 그대로의 재현, 그 사실성이 회화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진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화가의 그림과 너무도 흡사한 구도 때문인지 트럼프의 사진이 조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있지만, 입증할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수없이 촬영된 많은 사진에서 한 장을 선택하고 재단하는 과정에서 사진가의 관점과 취향이 개입할 여지까지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든 사진은 반드시 프레이밍(framing, 의도에 맞게 화면을 구성하는 것)을 거치기 마련이다.

드라마틱하면서도 논쟁적인 이 사진을 루브르 전시실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 옆에 나란히 걸어 놓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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