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진학, 학생 잠재력보다 부모 경제력·거주지역 영향 커”
“지역별 비례선발제, 입학정원 대부분 확대 적용하는 방식”
“수도권 인구집중 및 서울 주택가격 상승까지 완화할 수도”
27일 서울대학교 우석경제관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한은 공동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로 나선 이동원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장은 입시경쟁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서울대를 비롯한 상위권 대학의 ‘지역별 비례선발제(이하 비례제)’ 도입을 제언했다. 주제 발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을 통해서다.
연구팀은 서울대를 비롯한 상위권대 진학률의 격차는 학생의 잠재력보다 부모의 경제력, 거주지역 등 사회경제적 배경에 큰 영향을 받는 점을 주목했다. 연구팀은 ‘학생의 잠재력’을 ‘중학교 1학년 수학성취도 점수’로 설정했다. 과거 선행연구에서 수학점수가 학생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반영한 데 따른 것이다.
먼저 소득계층별(상위 20%, 하위 80% 비교)로 상위권대 진학률을 연구한 결과 학생 잠재력은 25% 정도의 영향을, 나머지 75%에는 부모 경제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잠재력 최상위에 속하는 학생의 비중이 소득상위그룹(상위 20%)은 22.3%로, 14.6%로 집계된 소득하위그룹(하위 80%)보다 1.5배 높았다.
이동원 실장은 “동일한 잠재력을 가진 경우에도 소득상위그룹 학생이 소득하위그룹 학생보다 상위권대 진학률이 더 높은 모습이었다”고 진단했다. 잠재력 최상위 집단의 상위권대 진학률이 소득상위그룹은 20.4%, 소득하위그룹은 10.7%로 1.9% 높았다.
지역별로 보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잠재력 기준 서울대 진학률 추정치는 0.45%인데, 실제 서울대 진학률은 1.08%로 1%를 웃돌았다. 강북지역와 제주도도 실제 서울대 진학률이 각각 0.58%, 0.60%로 잠재력 추정치(강북 0.42%, 제주 0.39%)보다 높았다. 이외에 연구 대상인 14개 지역 가운데 3개 지역을 제외하고 11개 지역은 서울대 실제 진학률이 잠재력 기준 진학률 추정치를 모두 밑돌았다.
이 실장은 “서울과 비서울 간 서울대 진학률 격차 중 약 8%만이 학생 잠재력 차이로 설명되고, 나머지 92%는 거주지역 효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중심지 거주 등이 학생의 잠재력보다 더 큰 영향을 발휘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2010년대 들어 자녀세대의 계층이동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크게 줄어들었다”며 “이러한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은 개인의 계층이동 노력을 떨어뜨려 사회 역동성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상위권대에 대한 교육열은 거주 이동으로 이어져 서울 주택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점을 짚었다.
연구팀은 초등·중학교생(만 7~15세)의 교육목적 서울 전입률은 2011년 0.3%에서 작년 0.5%로 상승했다. 강남·서초구의 경우 전입률이 같은 기간 1.4%에서 2.6%로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지난해 지방광역시 아파트대비 강남·서초구 아파트 가격 배수는 5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세도 3.5배 정도로 집계됐다.
연구팀은 경쟁의 악순환인 ‘나쁜 균형’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과거 여러 차례 대입제도가 개편됐지만 입시 경쟁 과열이 완화된 모습은 찾기 어려웠는데, 해결 방안 중 하나로 비례제를 제시한 것이다.
이 실장은 비례제를 도입하면 ‘로스트 아인슈타인(잃어버린 인재)’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도를 전체적으로 적용했을 때 서울대 실제 진학률과 잠재력 기준 추정치 간 격차의 평균(지역별 가중평균)은 0.14%p에서 0.02%p로 급감했다.
비례제를 도입하면 대학교의 학업 성취가 낮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에 연구팀은 지균, 기균으로 입학한 지방 학생의 성적이 우수한 점을 강조했다. 서울대 19학번의 지역별·전형별 학기성적 변화를 보면 전형별로 수시지균의 평균 학점(4.3점 만점)은 약 3.6점으로 수시일반을 소폭 밑돌았다. 정시일반(3.3점대)보다는 높았다.
이 실장은 “현재는 가난하지만 잠재력이 높은 지방 학생보다 평범하지만 부유한 서울 학생이 좋은 대학에 입학할 기회를 더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한국의 아인슈타인으로 성장해 혁신을 주도할 잠재력을 지닌 인재를 잃어버리는 ‘로스트 아인슈타인’ 현상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비례제가 과거 입시 제도보다 실현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 실장은 “다른 정책들은 실행과정에 있어서 어려움도 많고, 중장기 성격이 강하다”며 “비례제는 대학이 나서서 도입하면 정부의 정책적인 개입 없이도 여러 가지 많은 문제를 완화하거나 잠재력이 있는 학생을 뽑을 수 있다. 오히려 실현 가능성이 제일 크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참여한 정종우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과장도 “지방 국공립대 등을 육성하는 것도 좋은 정책이지만 비례제의 좋은 점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현재 상위권대가 결심만 하면 지금 당장 시행할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어서 이 제도를 제안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연구팀은 비례제를 도입으로 지방의 고소득층이 혜택을 보고, 지역 학군지를 중심으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는 등 우려에 대해 “충분한 유예기간을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충분한 유예기간을 주고 나서 학부모나 학생들이 대응할 여유를 주고서 시행을 하기 때문에 큰 피해나 큰 이득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