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괄 삭감했던 기초연구분야 예산을 원상 복구하고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을 역대 최대치인 29조7000억 원으로 책정했지만 연구 현장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부터 이공계 대학생, 청년 연구자, 과학자들과 현장 릴레이 소통을 진행했다.
이는 R&D 예산 삭감과 관련해 연구 현장과 소통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였다. 하지만 수차례 진행한 과기계와 소통 내용이 내년도 R&D 예산안에는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연구자는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진행한 형식적인 소통의 기회는 많았다”면서도 “자발적인 의지를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기보다는 답을 정해놓고 와서 과학계의 ‘목소리를 듣고 무시하고’의 반복이었다. 꼭 소귀에 경 읽기 같았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계는 R&D 예산 복원에 안도하면서도 들쭉날쭉한 R&D 정책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2028년까지 R&D 예산을 연평균 3.5% 증액시켜 2028년 R&D 예산을 30조5000억 원 수준으로 책정한다는 계획이다. 연도별로 재원배분 계획을 보면 2024년 26조5000억 원, 2025년 29조7000억 원(전년 비 11.8%↑), 2026년 30조 원(1.1%↑), 2027년 30조3000억 원(0.8%↑), 2028년 30조5000억 원(0.7%↑)으로 마련됐다. 내년을 제외하면 연간 증액률이 1% 미만 수준이다.
또 다른 연구자는 “예산은 돌아왔지만 정책 실패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대가가 너무 크다”며 “이미 짐을 싸고 연구 현장을 떠난 연구자들이 너무 많다. 유능한 과학자들도 당장 내년부터 연구비를 못 받게 돼서 손가락만 빨게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 예산은 역대 최대로 늘렸다고 했지만 내후년에는 또 어떤 구조조정을 단행할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역사적인 연구들은 대부분 우연히 작은 연구실에서 나와 산업화로 이어졌고 이게 과학의 역사”라며 “우리나라가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이나 독일 등 기초과학이 탄탄한 나라들은 정권이 바뀌든, 지도 교수가 바뀌든 관계없이 세대를 이어서 한 연구실에서 같은 연구를 이어가지만 우리나라는 지도교수가 나가면 연구 테마가 바뀌고 연구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R&D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거진 소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유상임 신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주요 과제로 꼽힌다. 유 장관은 R&D 예산 삭감 과정에서 제기된 소통 부재를 해소하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지난해 R&D 예산 삭감 과정에서 정부와 학계의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현장과의 대화에 업무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 장관은 취임 후 첫 연구현장 방문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를 택했다. 유 장관은 차세대반도체 연구소를 방문하고 KIST의 신진·중견 연구자들과 간담회를 가지며 출연연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