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정부와 의사들의 소모적인 신경전이 끝날지 기대감이 모인다. 비대위원장에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지목됐다. 임기는 내년 1월 회장 보궐선거 전까지다.
그간 의협과 정부는 서로에게 ‘태도 변화’와 ‘진정성 있는 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상호 태도 변화와 진정성 있는 대화가 오고 간 일은 없었다. 정부가 한발 양보할 때마다 의료계는 빈번히 이를 ‘꿍꿍이가 있는 회유책’으로 비하하거나, ‘당연한 조치’라며 맡겨놓은 물건 찾아가듯 무심한 태도로 일관했다. 의대생 휴학 승인과 전공의 사직서 수리 등 정부 나름의 화해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임현택 전 회장의 탄핵 이유를 고려하면 박 비대위원장의 차분한 언행이 예상된다. 전공의들과 대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점도 임 전 회장에게는 없는 박 비대위원장의 장점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임 전 회장의 대정부 활동을 비판하며 의협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위(올특위)’ 참여도 거부한 바 있다.
비대위는 전공의들과 소통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정부는 그간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 구성,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수련병원 전문의 확충 등 전공의 7대 요구안 대부분을 수용했다. 그런데도 전공의들이 요지부동인 이유는 요구안의 핵심인 의대 증원 백지화가 관철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2025학년도 수능조차 끝난 시점에서 이를 수용하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료계도 모르지 않을 터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공개적으로 박 비대위원장을 지지하고, SNS에 선출 축하 글까지 올렸다. 의협이 더욱 대정부 대화를 거부하고 정책 백지화만 고집하길 기대한다는 의미가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의료계에서 가장 많은 손해를 입은 이들은 학업과 수련이 중단돼 직업도 진로도 잃은 전공의들이다. 이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상황은 해결되지 않는다.
의사들과 정부가 진실성 있는 대화를 해야 할 때다. 오랜 갈등으로 소모된 사회적 자원이 너무 많다. 특히 고단할 미래를 알면서도 필수의료를 택하는 젊은 의사들이 가진 자부심과 자존감은 회복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백지화와 강행이라는 극단 외에도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