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눈] 민주주의의 균열, 우리 안에 있다.

입력 2024-12-2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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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전문위원ㆍ언론학 박사

계엄으로 민주정치 탑 훼손됐지만
뿌리는 타협없는 국회독주서 싹터
미성숙 국민의식 통렬히 반성해야

‘젠가(Jenga)’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먼저 플레이어들은 검지와 중지를 붙인 정도 크기의 나뭇조각들을 차곡차곡 겹쳐가며 쌓아 올린다. 두 뼘 반 정도 높이의 탑이 완성되었을 때,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차례를 돌아가며 탑이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나뭇조각을 하나씩 빼낸다. 자신의 차례에서 나뭇조각을 뺐을 때, 탑이 무너지면 패자가 되어 술을 마시는 등의 벌칙을 받는다. 조금씩 균형을 잃어 흔들리는 탑을 무너뜨리지 않고 절묘하게 나뭇조각을 빼내는 것이 젠가의 묘미이다.

어떤 이들은 특정 플레이어를 패자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나뭇조각을 거칠게 빼내기도 한다. 한두 번 차례가 돌아갔을 때 탑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도록 말이다. 젠가는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이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즐겨하는 단순한 게임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젠가가 시사적인 이유는 탑을 무너뜨린 것은 마지막 한 명이지만, 결국 게임 플레이어들이 빼낸 모든 나뭇조각들이 탑이 붕괴되는 데에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듯이, 마지막 차례의 사람이 모든 벌칙을 받게 된다.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전 세계에 유례를 찾기 힘든 대한민국의 탄핵 정국을 보며 이 게임을 떠올린 것은 또다시 우리가 익숙하고도 쉬운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익숙하고도 쉬운 길이란 ‘불온하고 미숙한 개인’에게 불행한 사태의 모든 책임을 돌리는 일이다. 독일의 심리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민주주의의 위태로움을 고찰하며, 인간 사회의 이러한 비난 기제에 대해 설토했다.

그는 우리 인간의 의식이란 너무도 나약하고 게으르다고 지적했다. 그렇기에, 항상 우리는 정체를 밝히기 쉬운, 그리고 비난하고 해결하기 쉬운 원인을 찾는다. 히틀러와 한줌의 나치주의자들에게 2차 세계대전의 모든 책임을 떠넘겼듯이 말이다. 그는 그보다 훨씬 저변에 있는 원인들, 예컨대 독일 정치 문화와 역사, 나아가 인간의 의식 구조에서 전쟁과 학살이라는 비극의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것들이 히틀러와 같은 인물이 한 동네의 그런저런 미치광이로 살다 죽지 않고, 한 국가의 수장이 되어 전쟁과 학살을 가능하게 했던 요소들이라며 말이다.

이번 한국의 탄핵정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고찰을 해야 한다. 비상계엄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이런 사달이 발생하게 된 데에 한 개인과 소수의 주변 인물에게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본질적 정치 문화와 풍토에 대해 각성해야 한다. 한국 정치가 ‘젠가’라면,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모두 그 게임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상계엄이라는 결정적 계기로 한국 민주주의 정치의 탑이 무너져 내렸지만, 사실상 정치인들이 하나씩 나뭇조각을 빼내가면서, 이미 탑은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국내 언론에서는 외신들이 이번 탄핵정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자화자찬 중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부에서는 두 번이나 거듭된 탄핵으로 인해, 어떠한 지도자가 오더라도 대한민국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편견이 퍼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정치적인 상황에 항상 휩쓸리고마는 국민들의 미성숙한 정치 이해도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갈등을 갈등으로, 비난을 비난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한국의 의회 민주주의 정치 풍토를 국민들이 계속 수용해준다면 또다시 한국 정치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의 정치라는 ‘젠가’의 플레이어지만 이들을 게임에 참여시킨 것은 바로 우리 국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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