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늘어 5년내 가장 높은 수준
방어력 약화·행동주의 펀드 압박
투자 재원 고갈돼 가치도 떨어져
"기업, 지분율 관리·방어 전력 강화
정부, 관련 법제도 등 정비 필요"

경영권 분쟁은 회사의 경쟁력에 커다란 흠집을 남긴다. 경영권 방어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집행되면서 회사의 체력을 바닥나게 한다. 투자와 연구개발(R&D)에 들어가야 할 여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누가 승자가 되든 기업이 받게 될 후유증은 심각하다.
10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발표한 ‘경영권분쟁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상장사의 ‘소송 등의 제기·신청(경영권분쟁소송)’ 공시는 315건으로 전년 대비 18% 증가하며 최근 5년 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2022년 175건이었던 공시 건수는 2023년 266건으로 늘었고, 지난해 300건을 돌파했다. 경영권 분쟁 공시회사수도 △2020년 55개 △2021년 58개 △2022년 56개 △2023년 93개 △2024년 87개에 달했다.
늘어난 경영권 분쟁만큼 ‘경영 정상화’는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한미약품그룹은 상속세 마련 과정에서 벌어진 가족 간 경영권 다툼으로 잃어버린 1년을 보냈다.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매출은 1조2836억 원으로 전년 대비 약 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004억 원을 기록하며 19% 감소했다. 한미약품 역시 같은 기간 매출액이 1조4955억 원으로 전년 보다 0.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162억 원으로 2% 줄었다.
그룹 경영의 척도인 주가는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며 25%가량 떨어졌다. 실적 훼손 우려, 인력 이탈에 따른 R&D 약화, 기업 이미지 훼손, 투자자 신뢰도 하락 등이 주된 이유였다. 한승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한미약품 리포트를 발간하며 기업가치 반등의 첫 번째 조건으로 경영권 분쟁 이슈 해소를 제시한 바 있다”며 “한미약품은 최근 1년 이상 지속한 경영권 분쟁에 따라 본질가치(영업가치+신약가치) 대비 최소 30~40% 지속해서 디스카운트돼 왔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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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은 2015년부터 이어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형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 및 내부 갈등으로 투자자와 시장의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그룹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롯데건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울 서초구 잠원동 본사 매각 등 유동화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영이 좀 더 안정화됐다면 선제적 리스크 관리로 피해와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KT&G는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경영권 도전을 받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는 2023년부터 KT&G 경영진을 압박하고 있다. KGC인삼공사 인적분할, 배당 정책 강화, 자사주 소각, 이사회 구성 개선 등을 요구해 왔다. 재계는 일부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적인 행보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일방적이고 지속적인 행동주의의 제안은 경영진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대응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해 경영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미국 상장사들의 기업가치는 1~3년 뒤 1.4% 올랐으나 4년 후에는 오히려 떨어졌다. 이는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에 자금을 과도하게 투입하면서 장기적 투자 재원이 고갈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방어력 약화, 상속세 부담, 사모펀드 및 행동주의 펀드의 부상은 향후 더 많은 분쟁을 야기할 가능성을 시사한다”면서 “기업들은 지분율 관리와 방어 전략 강화가 필수적이며, 정부는 관련 법제도를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