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 인상으로 의사쏠림 방지하고
면허제·건보재정 종합적 개편해야

의료 사태가 1년 넘게 장기화하고 있다. 정부가 내년도 의과대학 신입생 정원을 증원 계획 이전 수준인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전공의와 학생들의 복귀는 아직 지지부진하다.
작금의 의료 사태는 이른바 필수 분야라고 하는 흉부외과와 소아청소년과 등을 전공하는 의사 부족 현상에서 비롯되었다.(물론 의료서비스는 필수가 아닌 것이 없으므로 이를 필수·비필수로 나누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이런 현상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된다.
정부의 처음 계획은 의과대학 신입생 정원을 5년간 매년 2000명씩 늘리는 것이었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부족한 의사도 채워질 것이라는 예상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의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문제만 키웠다.
의료 문제는 3가지 사항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즉 의료 산업에 종사하는 의료인 수를 규제하는 면허제, 흔히 수가(酬價)라고 부르는 의료서비스의 가격,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건강보험이다.
의료서비스는 환자가 진단과 치료를 받기 전이나 후에도 의사가 적절하게 했는지를 잘 알 수 없는 신뢰재(credence good)다. 따라서 정부가 일정한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의료업에 종사할 수 있는 면허(license)를 주는데, 신뢰재의 경우에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면허제(licensure)는 반드시 진입장벽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의과대학 신입생 정원을 늘리는 데 반대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수가 변화에 민감하지 않으므로 의료서비스 공급이 늘어 수가가 내려가면, 수요가 늘어나 증가하는 수입이 수가 하락에 따른 수입 감소보다 적어 의사들의 총수입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수가의 문제이다. 사실 작금의 의료 사태의 발단이 된 특정 분야의 의사 부족 현상은 수가 규제에 그 원인이 있다. 지금 대부분의 의료서비스 수가는 건강보험에 연계되어 낮게 규제되고 있다. 물론 수가 규제를 해도 이미 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의사들은 계속 의료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단기적으로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수가는 앞으로 의사가 되려는 사람이 어떤 분야를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신호등 역할을 한다. 즉 수가가 낮게 규제되어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의사들은 그런 분야를 선택하지 않는다. 일은 고되고 대가는 시원찮은 필수 분야의 의사가 부족하고, 수가 규제가 없는 분야에 의사가 몰리는 지금의 현상이 그것이다. 그래서 의료산업 선진화는 신입생 정원 조정에 앞서 수가 조정부터 착수했어야 했다.
건강보험 재정은 수가 인상에 따라 급여액이 늘어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물론 경증 질환은 환자 본인 부담액을 높이고 중증 질환은 보험에 의존하도록 하면 재정 압박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현행 보험료 수입 구조에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가입자들의 부담이 늘겠지만,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그래야 의료산업이 돌아간다.
결국 의료산업 선진화를 위해서는 수가부터 상향 조정해야 한다. 완전히 자유화할 수 있으면 더욱 바람직하다. 지금의 수가는 의사와 환자를 모두 어렵게 하는 구조다. 의사들, 특히 전공의들은 낮은 봉급과 고된 일과에 혹사당하기 일쑤다. 또 의사가 없거나 부족한 분야의 환자들은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세계 최고라는 찬사는 지속될 수 없는 허구다. 수가가 전반적으로 상향 조정되면 의사들이 성형외과나 피부과에 쏠리는 현상도 점차 완화된다. 즉, 각 분야에 의사들이 고르게 분포된다. 개원 면허제는 또 다른 진입장벽을 낳을 뿐이다.
소득이 높아지면 건강 유지와 질병 치료를 위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한다. 이에 따라 의사 공급도 늘어야 한다. 특정 직종에 종사할 사람 수를 현재 그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하는 직종은 없다. 더구나 한 사회의 적정 의사 수는 의료 시장에서 정해질 뿐,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신입생 증원을 문제 삼고 병원과 학교를 떠나 있는 전공의와 학생들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의료 산업의 초토화를 막으려면 면허제, 수가,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입체적으로 살펴 개편의 틀을 짜야 한다. 이후 지역 의료 문제 등을 점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인간 세상에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