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은 17일 최근 방문판매법 개정안 논란으로 중앙인사위원회의 징계절차를 밟고 있는 공정위 이성구 전 소비자정책국장에 대해 "정부 입법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고 본다. 중앙인사위원회에 징계의결을 신청했고 아직 결정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민주당 신학용 의원의 "이성국 전 국장을 징계하라는 청와대나 법무부의 외압이 있었는가. 없었다면 징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질의에 이같이 답변했다.
이러한 이 전 국장이 징계 절차에 들어간 발단은 지난 7월6일 공정위가 국회에 제출한 방문판매법 개정안. 공정위는 다단계판매를 규율하는 이 법에서 중개 판매의 후원 수당 산정 기준을 수수료의 35%에서 상품 가액의 35%로 수정해 국회에 제출한 것.
이를 통해 다단계 업체가 거액 수당을 미끼로 사기 거래가 성행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시민단체인 YMCA가는 지난 2006년 5조원의 피해액과 25만명의 피해자를 양산했던 사기 사건인 JU 사태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하지만 이후 더 이상의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우려는 과장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 공정위 내부의 평가다. 또한 개정안이 수수료에 대해서만 공제조합 보증을 받던 것이 상품 대금 전액으로 확대돼 소비자의 사후 피해 구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공정위는 내부 집중 조사를 벌인 끝에 이 국장이 윗선에 제대로 보고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징계절차를 밟았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나 법무부와 검찰 쪽애서 그에 대한 징계 외압을 걸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국장은 지난달 직무가 중단된 채 현재는 소비자정책과장이 국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공정위는 현재 공석인 소비자정책국장을 공모중이다.
최근에 만난 이 국장은 기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결단코 부하 직원들에게 은폐나 축소를 지시한 사실도 없었고 관련업계로부터 로비를 받은 사실도 전혀없었다"며 "법안과 관련 상급 결재라인인 당시 사무처장, 상임위원, 위원장 직무대행 등의 결재를 받았고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돼 절차상의 문제도 없었다"고 강변했다.
이어 "오히려 이를 꼼꼼히 살피지 않은 결재라인에도 업무 태만의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며 "법의 효과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면 이미 난리가 났었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사안도 입법과정에서 국회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 보완하는 절차를 가질 계획"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앙인사위의 징계 결정 수위에 따라 국가를 향한 행정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독단적인 일 처리는 공직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 이 국장에 대한 책임론도 만만치 않다. 공정위 한 고위관계자는 "소비자정책국이 이번 개정안에서 워낙 민감한 사안을 담고 있음에도 명확한 상부에 설명없이 이를 통과시키려 했다는 점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분명히 절차상의 하자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구 전 국장은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공정위 독립이전인 경제기획원 시절부터 소비자기획과장, 특수거래과장, 전자거래보호과장, 약관제도과장 등 소비자관련 업무를 두루 거쳤다.
그는 지난해 1급 공무원 직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민관합동규제개혁추진단장을 역임한후 올 1월 개방형 직위인 소비자정책국장에 공모해 지난 8월까지 소비자정책국장을 했다.
당시로서는 1급 공무원 신분으로 2급 국장 직에 지원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이 국장의 업무 스타일에 대해 '빠른 두뇌 회전과 발 빠른 행동으로 앞서가는 소비자 정책을 펼쳐 왔다"는 호평과 함께 "너무 앞서가고 나선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 동안의 경위야 어찌하던 간에 이 전 국장은 공정위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나머지는 중앙인사위원회의 징계 수위 결정만 남겨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