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형렬 회장은 1935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목포해양대를 졸업하고 1972년 남양건설을 인수한 뒤 남양주택산업, 광주매일신문 등 9개 자회사를 거느린 기업으로 키워왔다.
'맨주먹으로 일어선 사나이'로 불리고 있는 그는 대한건설협회 전라남도 회장과 대한건설협회 본회장, 건설단체총연합회장, 건설근로자 공제회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지역과 전국 건설업체들의 대변자로 업계의 어려움을 정부에 호소하는 등 건설업의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그는 '우리 서로 만났을 때'라는 회고록에서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연이라 했던가.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산다. 혈연, 지연, 학연이나 부부의 인연처럼 만들어지는 연도 있고 우연하게 맺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할 정도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회고록에서 비춰지듯 그는 민주평통광주부의장, 광주상공회의소장, 2010여수엑스포전남유치위원장 등 각종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며 지역사회를 이끌고 있는 인물로 인정을 받아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마형렬 회장과 남양건설은 바늘과 실이다"며 "그가 남양건설에 쏟은 정렬과 열정으로 미뤄 짐작컨데 남양건설을 넘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마 회장과 관련해 다른 시각을 내비쳤다.
광주지역에 연고를 둔 한 건설업체 직원은 "가족에게 주요 경영을 맡기고 고액 연봉을 지급하는 등 족벌 방만 경영이 오늘의 결과를 낳게 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