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된 도로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주차해 있고 올라타는 사람들과 내리는 사람들이 엇갈렸다.
마을의 상징이된 봉하쉼터엔 중년의 두 남자가 파전에 봉하쌀막걸리를 곁들이며 노 전 대통령을 회상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마을을 산책하다 들렀다는 봉하쉼터. 한쪽 벽면엔 노 전 대통령이 의자에 한자 팔을 괴고 담배 한 개피 물고 있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관광안내소와 갤러리, 노 전 대통령 생가 등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방명록이 어김없이 방명록이 비치돼 있다.
"사랑합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당신의 소신있는 모습...배우고 갑니다" "편히 잠드소서" 수많은 글귀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사람들은 모두 한 곳을 향한다. 손에는 관광안내 책자가 들려 있지만 들여다 보진 않는다. 모두들 목적지가 같기 때문이다.
발 길을 옮겨 가장 먼저 닿는 곳은 노 전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
생가는 퇴임후 대통령의 지인이 생가터를 매입해 김해시에 기부, 김해시에서 원래의 모습인 전통 초가집으로 복원했다.
생가 너머로 노 전 대통령 사저가 대나무 숲을 사이에 두고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 희미하게 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부엉이 바위의 윗자락이 보인다.
묘역은 한창 공사중이었다. 포크레인등 중장비들이 동원돼 묘역 주변에 박석을 깔고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다.
서거 1주기인 23일 이전에 공사를 끝낸다고 하니 지금쯤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공사로 인해 묘역엔 들어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공사현장 옆에 마련된 임시 묘역(사진으로 프린트된 묘역)에서 헌화하거나 기념촬영을 한다.
노 전 대통령이 투신했던 부엉이 바위까지 오르는 길에는 여전히 노란리본이 걸려 있다.
1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묵묵히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리본들의 안내를 받아 부엉이 바위에 오른다.
노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 발을 멈춘 이들은 모두 잠시 상념에 잠긴다. 그리고 담배 한대를 꺼내 든다. 멀리 묘역이 보이고, 대통령 사저도 눈에 들어온다.
노 전 대통령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지었을 들녁도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곳에서 노 전 대통령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사람들이 지나가네" 그가 바라봤던 그 곳엔 이제 관광객들만 가득했다.
이 곳에서 23일 오전 11시부터 추모법회가 봉행된다. 정토원장 선진규 법사는 "이번 1주기가 노 전 대통령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년 전 갑작스런 서거로 일부 추모행렬은 군중심리가 작용했지만 지금이 노 전 대통령을 다시 평가하고 진정으로 추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진규 법사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노 전 대통령은 어떤 사람일까.
"앞서간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꾸지 못하는 꿈을 꿨던 사람이었다" "늘 개인이 아닌 국민이 어떻게 가야하는 가만 생객했던 사람이었다"
선진규 법사가 봐온 노 전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었다. 선 법사는 "불교적으로 이야기 하면 중생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곳, 봉하마을을 찾는 이들에게는 제각기 이유가 있다. 경남대 관광과 학생들은 학교 과제를 위해 팀원들과 함께 왔다고 했다.
이 학생들은 노 전 대통령 1주기도 얼마 안남고 해서 과제로 이곳을 정했는데 너무 꾸며지는 봉하마을이 어색하다고 했다.
정읍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온 이들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애쓴 고마운 사람에게 한 번은 와야 할 것 같아서 단체로 왔다고 했다.
아이를 목마태우고 산을 오르는 부부는 여지 없이 '노사모'다. 어떤 이들은 단지 관광을 위해 오기도 했다. 노무현을 싫어 하지만 유명한 관광지가 됐으니까 온 사람들이다.
이유가 어찌됐든 봉하마을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매일 수많은 표정의 얼굴들이 들어왔다 흩어진다. 그리고, 각자 다른 꿈을 꾼다.
노 전 대통령의 꿈은 이곳에서 막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