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엔화의 고공행진을 멈추기 위해 일본이 대대적인 시장개입을 단행했다.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개입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4회에 걸쳐 일본발 외환시장 대란을 진단한다)
[일본發 글로벌 환율전쟁 개막]
① 일본 '비불태화' 통했나?
② 日 개입 폭탄...475조원 시장에 푼다?
③ 일본 단독개입, 글로벌 환율 전쟁 시발탄?
④ 각국 보호무역주의 재부상 가능성은?
일본이 15일 지금까지의 국제적인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선진국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6년 만에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글로벌 환율 전쟁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의 이번 환율개입이 통화 거래 규모가 하루 4조달러(약 464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외환시장에 파문을 일으켰다고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과거 단독 개입은 선진국에선 일반적인 수단이었지만 최근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무역 상대국에 불공평하게 적용된다는 점과 장기적으로 효과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환율 개입은 자국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경기를 부양하려는 미국과 유럽에는 치명적이다.
금융 위기 이후 급격하게 회복세를 보이던 경기가 다시 둔화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향후 5년간 수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추가 금융완화를 시사해 달러 가치 하락을 부채질했다.
유럽 역시 금융 위기에 이어 재정위기까지 겹친 상황에서 의지할 곳은 수출뿐이었다. 따라서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유로 약세를 묵인해왔다.
미국과 유럽의 방어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엔화였다. 15일 오전 한때 82엔대까지 치솟았던 엔화 값은 일본이 엔을 팔고 달러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환율 개입을 단행한 직후 달러당 84엔대 후반까지 내렸다.
또 지난달 한때 유로당 106엔대에 거래되며 8년래 최고치로 뛴 엔화는 유로에 대해서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일본의 이번 단독 개입은 자국 통화 약세를 묵인하는 미국과 유럽에 대한 일종의 보복 조치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작용은 벌써부터 새어 나오고 있다.
미 하원 세입위원회의 샌더 레빈 위원장은 15일 중국 위안화와 관련된 공청회에서 일본의 엔 매도 개입에 대해 “매우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일본의 개입이 중국의 위안화 절상 불요론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또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산업단체로 구성된 ‘비즈니스 유럽’의 마크 스토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장 조작에는 찬성할 수 없다”며 “일본의 산업이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은 이해되지만 이러한 환율 개입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신흥국, 특히 중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통화 가치는 시장의 힘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 유럽은 2000만 회원사를 둔 유럽 최대 산업단체로 지금까지 유럽 기업의 수출을 저해할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즉각적인 반박 성명을 발표해왔다.
한편 일본의 환율 개입으로 엔이 아시아 통화에 대해서도 약세를 기록하면서 각국의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15일 일본의 환율 개입 직후 원화 등 아시아 주요 통화는 엔에 대해 일제히 강세를 나타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아시아 각국이 일본에 맞서 자국 통화 매도 개입에 나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위안화 통제를 지속해온 중국은 9월 들어 자국 통화 강세를 용인하는 태도로 일변했으나 일본의 이번 개입을 계기로 중국 주도로 아시아 각국에 자국 통화 매도 개입을 한층 가속화할 구실을 주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양상은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세계 경제가 변화하면서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라고 신문은 분석했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주요국 경제는 정체된 반면 중국 등 신흥국이 성장을 견인하면서 신흥국 시장 쟁탈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각국이 자국 통화 가치 약세를 추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며, 아시아 국가들은 이를 노리고 자국 통화 매도 개입을 반복해 왔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본도 이번 개입을 통해 아시아 각국과 나란히 자국 통화 가치의 약세 경쟁에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국영 신화통신은 15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재무상이 환율 개입 사실을 분명히 한 직후, “모든 나라에 환율 안정은 중요하다”며 일본의 개입에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그 동안은 미국으로부터 위안화 절상 압력에 시달려 왔지만 일본의 개입을 계기로 자국의 환율정책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환율 시장 안정에는 타국과의 공조 개입이 불가피하다. 일본의 이번 단독 개입 효과가 단기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외환시장에 개입한 선진국은 스위스뿐이다.
스위스 중앙은행인 스위스 내셔널 뱅크(SNB)는스위스프랑 대비 유로 하락을 저지하기 위해 유로를 매입, 지난 6월에 본격적인 개입을 멈추기까지 900억유로 어치를 사들였다. 그러나 개입에도 불구하고 유로는 연초 대비 스위스프랑에 대해 12% 하락했다.
15일 일본이 얼마만큼의 자금을 시장에 투입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2조엔(약 27조원)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난번 규모보다 커진 것은 확실하다.
일본이 지난 2004년 3월까지 15개월간 에 개입했을 당시에는 시장에 35조엔을 투입했다. 2003년 환율로 환산하면 3200억달러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나 결과는 당국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거의 없었고 엔화 값은 개입 개시 시와 거의 같은 수준에 거래됐다.
AXA인베스트먼트 매니저스의 데니스 굴드 아시아ㆍ일본 투자책임자는 “개입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미국과 중국의 참여가 필요하지만 양국이 그렇게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굴드 책임자는 “전세계 국가가 경제성장에 문제를 안고 있는 가운데 어떤 나라도 자국 통화가치 상승을 바라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공조 개입할 나라는 전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을 포함한 선진 7개국(G7)은 최근 직접 개입은 통화가 위험수위에 달했을 경우, 특히 투기세력의 공격에 의해 상승했을 경우에만 실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엔고는 이 범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재무성의 대리 자격으로 일본은행이 엔 매도 개입을 계속하면 미 당국에서 극심한 비판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통화 시장을 둘러싼 국제적 긴장 관계가 한층 냉각될 수도 있다고 WSJ은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