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의 종합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실효환율에서도 엔은 세계 주요 통화 가운데 가장 강세를 보여 당국의 노력을 무색케 했다.
계속되는 엔화 강세가 수출기업의 실적을 악화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주가가 가파르게 하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올 상반기(4~9월, 일본 회계연도 기준) 일본 증시에서 닛케이225 지수는 16% 하락해 세계 주요 주가지수 가운데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지난달 30일 일본 재무성은 9월 환시 개입 규모가 2조1249억엔(약 29조원)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엔화가 달러당 82엔대로 치솟자 당국은 2004년 3월 16일 이후 6년 6개월 만에 환율 개입을 단행했다.
일본과 미국 유럽에서 대규모 개입을 단행, 15일 하루에만 2조엔을 풀었다. 엔 매도 개입 규모로는 일일 사상 최대치다.
그러나 환율 개입 직후 85엔대로 하락한 엔은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 30일에는 달러당 83엔 대에서 움직이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올 상반기 9개 주요 통화의 등락률에서 엔은 9.4% 상승, 가장 큰 폭의 오름세를 기록했다. 반면 가장 큰 하락률은 보인 것은 3.4% 하락한 원화, 달러와 유로도 각각 1%대 하락세를 보였다.
일본 당국은 필요할 경우 앞으로도 외환시장 개입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는 "엔화 강세에 따른 경제적 영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면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시의적절하게 적합한 조치를 이행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거듭 표명하고 있다.
엔화 강세로 실적 악화가 우려되는 수출주가 맥을 못 추면서 주식시장도 파죽지세다.
30일 닛케이225 지수는 전날보다 190.03포인트(1.99%) 떨어진 9369.35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3월말 대비 1700포인트 이상 하락한 수준으로,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촉발된 2008년 하반기 28%가 빠진 이래 최대폭이다.
5월부터 유럽 재정위기가 급부상한 데 이어 여름부터는 미국의 더블딥(이중침체) 우려가 강해지면서 가뜩이나 약세인 일본 증시를 한층 짓눌렀다.
여기다 6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갑작스럽게 사퇴를 하고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는 등 정국 불안도 투자심리를 냉각시켰다.
UBS증권의 히라카와 노보루 수석 스트래티지스트는 "재정 정책이나 엔 매도 개입 효과가 동반되지 않으면 지수 상승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상반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 신흥국 주식시장은 강세장이 이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6%, 필리핀은 30% 상승하며 역사적인 기록을 보였다. 인도도 15% 상승했다.
내수 확대를 배경으로 한 고성장으로 디플레 우려가 고조되는 선진국 시장과의 양극화가 한층 두드러진 양상이다. 미국의 경우 거의 제자리 걸음이었고 독일은 1.5% 상승에 그쳤다.
HSBC 글로벌 자산운용의 필립 풀 펀드매니저는 "젊은 인구가 많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돼 꾸준한 성장이 예상되는 신흥시장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급격한 엔고가 기업 실적을 악화시키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환율 개입을 반복할 경우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자국 통화 약세로 수출 경쟁력을 높여 경기를 부양하려는 미국·유럽과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불만이 터져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재무성 관계자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일본도 제재대상에 거론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