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발주자에서 2위로…초고속 성장 = 정 사장이 현대카드·캐피탈에 입성한 것은 지난 2003년 초. 2001년 말 다이너스카드 코리아를 인수하며 시장에 진출한 현대카드는 자리를 잡기도 전에 카드대란 이라는 위기를 만나 고군분투하는 상황이었다.
정 사장은 먼저 태스크포스팀(TFT)과 상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일의 속도를 높였다. 다른 카드사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자산 축소에 나설 때 현대카드는 고객과 시장의 분석에 주력했다. 그리고‘M 카드’의 전면 개편이라는 운명적 결단을 내린다.
‘Motor’를 의미하는 자동차 전문 카드로 출시했던 M카드를 다양한 기능을 갖춘 ‘Multiple’ 카드로 탈바꿈하고 이름도‘현대[M]카드’에서‘현대카드M’으로 바꿨다. 카드 고객의 충성도를 확보하고 해당 카드를 주사용 카드로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 였다.
이는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 엄청난 인기를 모았고 790만장이라는 단일상품으로는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현대카드를 널리 알렸다.
정 사장의 통찰력과 M카드의 인기에 힘입어 2003년 시장점유율(신용판매 취급액 기준) 1.8%에 불과했던 후발주자가 7년만에 15.6%로 시장을 확대해 업계‘2위’로 급부상했다.
또한 2003년 6273억원의 적자를 냈던 현대카드는 지난해 212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현대캐피탈 역시 87.8%의 시장점유율(현대·기아차 캡티브 시장 기준)을 기록하며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정 사장이 금융권 중소기업이였던 현대카드·캐피탈을 대기업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이다.
◇ 일등보다 유일이 되자=“우리는 1등에 관심이 없다. 가장 많은 회원수가 아닌 가장 갖고 싶은 카드가 우리의 목표다”. 정태영 사장의 지향점을 분명히 드러내는 한 마디다.
정 사장은 다른 카드사나 캐피탈사, 은행과의 경쟁을 거부한다. 그는 금융과 마케팅, 기업 문화 등 다방면에서 최고를 이루는 현대카드만의 모델을 추구한다. 다른 회사보다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현대답지 않은 것은 싫어하고 다른 회사와의 경쟁이 아닌 회사내 동료와의 경쟁을 독려한다.
그가 보여준‘차별화’의 예는 너무도 많다. 지금은 일반화된‘세이브 포인트’ 제도와‘VVIP카드’ 모두 정 사장이 처음 도입한 것들이다.
현대카드의 상징이 된‘알파벳 시리즈’와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다.‘투명카드, 미니카드, 갤러리카드, 컬러코어카드’ 등 독특한 디자인은 현대카드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며 카드업계에 디자인 바람을 몰고 왔다.
모델보다 메시지에 중점을 둔 광고는‘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옆면, 옆면, 옆면’ 등 유행어를 남겼고 세계적인 스타를 초청해 펼친 슈퍼시리즈는‘역시 현대카드’란 평을 받았다.
사회 공헌 또한 남다르다. 버스정류장에 아트쉘터를 만들고 제주 올레길에 이정표를 세우는 등 금전이 아닌 재능으로 기부한다.
정 사장은‘지속적인 변화(Never-Ending Changes), 전략적 관점(Strategy Focusd), 속도(Speed), 혁신(Innovation)’이라는 4대 경영철학을 실천하며 현대카드·캐피탈을 닮고 싶은 기업으로 일궈 냈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과 이석채 KT 회장이 현대카드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았을 정도다. 또 기업체 및 공공기관 100여곳에서 현대카드를 견학한 바 있다. 그가 줄기차게 추구해 온 ‘차별화’의 성과다.
◇ 직원이 자산…일하고 싶은 회사로= 정 사장은 회사를 이루는 주주, 고객, 직원중 직원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오늘이 있기까지의 헌신과 성과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정 사장의 직원 사랑은 회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현대카드 사옥을 들어서면 탁구대와 게이트볼 필드, 자전거가 비치돼 있다. 엄숙한 로비를 구성원들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전환한 것이다.
지하에는 피트니스, 골프장, 사우나, 세탁소, 구두방 등을 마련해 직원들이 회사에서 일상적인 편의를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구내 식당에서는 호텔 출신 요리사가 고급 요리를 제공한다.
의사소통 방식은 최대한 자유롭게 해 효율성을 높였다. 주간회의 대신 2~3개 안건을 두고 집중 토론을 벌이는‘포커스 미팅’을 한다. 실무자들은 간략한 자료만 받고 회의에 참석하며 결론은 치열한 논쟁 끝에 그 자리에서 도출된다.
나머지 업무는 이메일과 전자 결재로 처리해 의사결정 과정을 간소화했다. 평사원이 올린 결재 서류가 정 사장의 결재를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10시간 이내일 정도다.
‘커리어 마켓’이란 인력시장 도입도 정 사장의 아이디어다. 온라인에 구축한 사내 채용시장에서 인력이 필요한 부서는 구인 공지를 하고 부서를 옮기고 싶은 직원은 정보를 등록하고 마케팅을 한다. 전체 인사발령의 75% 이상이 이곳을 통해 이뤄지며 직원들의 자기 계발 기회를 높이고 있다.
매달 1차례씩 개최하는 ‘해피아워’에선 임직원이 모여 맥주를 즐기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다. 참석을 강요하진 않지만 즐거운 분위기로 인해 직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좋은 곳은 직원에게 주라며 변두리의 작은 방을 이용하고 직원도 상사가 하는 일을 알아야 한다며‘직원들께 드리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모습. 정 사장이 직원들로부터 팬레터를 받는 이유다. 열정과 혁신의 기업 문화로 금융권의 패러다임을 바꿔 나가는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