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8일 국회에서 열린 개헌관련 의원총회에서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친이계 주도로 우여곡절 끝에 열린 개헌 의총에는 전체 의원 171명 중 130여명이 참석해 높은 출석률을 보였다. 여기에는 예상을 깨고 친박계 의원 30여명도 참석했다. 개헌 의총을 반대해온 친박계 의원들의 대거 참석은 의외였다.
비공개로 진행된 의총에서 개헌 찬성론자들만 발언에 나서면서 '그들만의 개헌론'에 열을 올렸을 뿐 친박계 의원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여전히 '무시 전략'을 이어갔다. 개헌 필요성을 주장하는 친이계 의원들의 발언을 듣기만 했을 뿐 친박계 의원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어쨌든 친박계의 의총 참석으로 신년좌담에서 개헌을 언급한 이명박 대통령의 면을 살려줬을 뿐 아니라 개헌론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또 친이-친박간 대립 구도로 보는 시각도 차단했다.
물론 현 시점에서의 개헌에 대해선 반대다. 친박계 서병수 최고위원은 이날 의총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헌이 야당과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해 실현 가능성이 없는데도 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친박계가 공개석상에서 입을 닫고 무시전략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개헌 논란의 중심에 서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번 의총이 단순히 개헌 추진 여부를 결론 내리는 것 외에도 여권내 계파간 역학 구도에 변화를 초래할 지렛대로 작용할 수도 있어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는 차기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전략과 무관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 세종시 파동과정에서 이 대통령과 첨예하게 대립한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세종시 원안' 고수 입장을 관철시켰지만 지지율이 30% 아래로 추락하는 등 '세종시 역풍'으로 곤혹을 치른 바 있다.
개헌 논란이 또다시 친이-친박간 계파 대결로 확대되고, 장기화 될 경우 현재의 박 전 대표의 대선가도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 친박계가 개헌 반대 입장을 전면에 내세울 경우 최근 개헌 필요성을 언급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관계는 다시 냉각될 개연성이 높다.
친박계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친박계가 전면적으로 개헌에 반대하고 나선다면 세종시 대결보다 그 강도는 더할 것"이라며 "어차피 개헌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친박계가 전면에 나설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종시처럼 또다시 친이-친박이 충돌하고 대립하는 모습이 비춰지면 박 전 대표에 상처만 깊어진다"면서 "싸움이 커질수록 이슈화가 되기 때문에 괜히 논란에 불부치지 말자는 게 의원들의 생각으로 철저한 무시 전략"이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실질적으로 개헌 추진이 힘든 상황인 만큼 불필요한 논란은 차단하겠다는 얘기다. 현행 헌법상 개헌은 재적의원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하므로 친박계의 협조가 없는 개헌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민주당도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개헌 논의가 친이계의 공론(空論)으로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개헌 의총 이틀째인 9일에도 친박계 의원들은 여전히 '무시전략'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