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학자(Csisologist)’로 손꼽히는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증시 대세 상승기의 끝자락에서 16세기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에 버금가는 예지력으로 학계와 재계에 경종을 울렸다.
그가 내놓은 베스트셀러 저서인 ‘비이성적 과열’은 위기 때마다 회자되며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00년 출간 당시 미국 주식시장은 1995년부터 2000년에 걸친 이른바 ‘닷컴 버블’ 현상으로 대세 상승기의 한복판에 있었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6년간 뉴욕 증시에서 다우지수는 3배나 뛰었다. 다른 경제 분야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었다.
닷컴 버블 말기에 등장한 ‘비이성적 과열’은 당시 증시 상황을 정확히 짚어줬고, 주가 폭락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경고했다.
더 나아가 주가 폭락에 대한 대비책까지 제시해 닷컴 버블 붕괴에 따른 정부와 개인의 피해를 완화하는데도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이 책이 주목을 받은 것은 주가 폭등 현상에 대해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과 달리 구조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을 통한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는 미국 가정의 인터넷 보급, 퇴직 시기를 맞이한 베이비붐 세대 사이에 확산되는 “주식은 장기적으로 안전하다”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한 군중심리를 분석했다.
그는 문화적 요인으로서 스포츠 중계처럼 다우지수 추이를 실시간 보도하는 언론의 영향을 지적했다.
실러 교수는 투자자들이 시장의 진정한 가치를 배우고, 시장이 ‘이성적인 과열’을 보이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시장은 원래 불안정한 속성이 있기 때문에 과거의 기준에 맞춰 과대 평가하면 쓴맛을 보게 될 것이라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미국 사회보장제도의 민영화를 절대 반대하는 한편 퇴직 연금을 주식 투자에 쏟아붓도록 부추기는 개인연금 상품은 전면 수정해야 하며, 향후 저축 및 투자제도는 리스크 관리의 목적을 감안해 보다 현명하게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쓴소리에도 불구하고 ‘비이성적 과열’은 전세계 연금 스폰서와 펀드매니저, 투자 컨설턴트, 정책 담당자들의 필독서가 됐다.
실러 교수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것이 조지 애컬로프 버클리대 교수와 함께 2009년 1월 내놓은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다.
‘야성적 충동’은 불황, 실업, 빈곤, 부동산 가격 변동 등 경제학적이며 심리학적 사례를 근거로 자유시장경제가 만들어낸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정부의 적극적 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야성적 충동의 다섯가지 요소인 자신감, 공정성, 부패와 악의, 두려움, 이야기 등이 현대인의 경제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레이거노믹스, 대처리즘, 합리적 기대이론의 허점을 밝혔다.
여기다 100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이번 금융위기의 처방전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석을 내려 경기 변동과 위기에 관한 지식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위기에 이은 다양한 변수로 인해 세계 경제가 ‘더블딥’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비이성적 과열’과 ‘야성적 충동’은 경기 변동과 투자 붐에 휘둘리는 개인들에게 바람직한 안내잡이 역할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