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주식의 영향력에서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금호아시아나ㆍ동부ㆍ동양ㆍ대한전선 그룹 등 재무개선 약정을 체결한 대기업 그룹 총수의 보유주식 중 80% 이상이 은행 등 금융사에 담보로 잡힌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삼성ㆍLGㆍ롯데ㆍ현대중공업 등 총수들의 주식은 담보가 거의 없어 재벌 주식의 영향력에서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24일 재벌닷컴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 이들 4개 대기업 그룹 총수의 보유주식 담보제공 비율은 평균 86%에 달했다.
총 135만6906주의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 주식 134만6512주를 산업은행에 담보로 제공했다. 보유주식 대비 담보제공 비율이 무려 99.2%에 달한다. 사실상 보유 주식 전부가 담보로 잡힌 셈이다.
지난 2009년 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금호석유와 아시아나항공이 채권단 자율협약에 따라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자 대주주로서 책임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담보 형태로 사재를 출연한 결과다.
동부그룹의 김준기 회장도 보유주식(1541만9769주) 중 79.8%(1230만305주)를 담보로 내놓았다. 김 회장의 주식담보비율은 전년 동기 대비 13.9%포인트 늘었다.
김 회장은 동부화재 주식 544만여주를 하나ㆍ외환ㆍ광주은행과 한국투자ㆍIBK투자증권, 한국증권금융, 프라임ㆍ솔로몬저축은행 등에 담보로 제공했다.
동부건설이 산업은행에서 빌린 차입금에 대해 본인 주식 238만여주를 담보로 내놓기도 했다. 역시 재무개선약정 체결 대기업 그룹인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과 대한전선그룹의 설윤석 부회장의 주식도 속 빈 강정이나 마찬가지다. 보유 주식의 83.8%와 81.7%를 각각 담보로 제공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재현 회장은 농협 등에 차입금 담보로 동양메이저 주식을 맡겼다. 국내 재벌의 주식 담보 비율이 높은데도 경영권에는 큰 문제가 없다.
증권사의 지주회사 담당 애널리스트는 "기업재무 악화로 채권단의 영향하에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실을 가져온 총수의 책임론이 불거지지만, 우리나라는 보유주식을 담보로 잡고 경영권을 인정해 주는 방식을 오랫동안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담보로 제공된 주식은 특별한 위법행위가 없는 한 의결권에 제한을 받지 않지만,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껍데기에 불과하다.
국내 30대 대기업 그룹 총수의 담보제공비율은 3월 말 기준으로 16.8%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8%포인트 증가했지만, 선두권 그룹 총수들은 사정이 달랐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담보 주식이 2000주(삼성전자)에 불과했고, LG그룹 구본무 회장과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 등은 담보로 잡힌 주식이 단 한 주도 없다.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은 보유주식(현대차 등)의 34.5%에 질권이 설정돼 있다. 질권은 일종의 연대 보증 성격으로 채무 상환에 문제가 발생하면 채권단에 우선 처분 권리를 준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STX그룹 강덕수 회장도 보유주식 중 26%(한화 등)와 49.8%(STX)에 질권이 설정됐다. 보유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사례도 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9월 SK C&C 주식 401만여주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총 보유주식의 17.9%에 해당한다. 당시 주가 등을 고려했을 때 대출금액이 15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최 회장의 주식담보대출을 받자 SK그룹의 지배구조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자금으로 활용될 것이란 설들이 나돌았었다.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도 현대상선 등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현 회장의 담보비율은 전년보다 51%포인트나 증가한 85.4%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