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개판 오분전이다.” -저축은행 한 고객.
우리나라 금융의 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금융경찰 금융감독원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신임 금감원장이 취임한 지 한달도 안돼 내부 직원들의 온갖 비리와 금융기관의 부실 관리 감독 실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금감원의 위엄 강화를 외치며 날선 칼날을 들고 보무당당하게 등장한 권혁세 금감원장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만신창이가 됐다.
금감원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달 한달동안 금감원 직원의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 연루, 보해저축은행 금품수수, 부실기업의 증자사기 연루, 부산저축은행 친인척 예금인출 묵인, 현대캐피탈ㆍ농협 전산망 관리 소홀 등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금융업계에서는 그동안 관례처럼 암암리에 행해져 오던 편법 및 불법의 실태들이 한꺼번에 불거져 나온 것이라며 금감원이 총체적 난관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감원 직원들은 비리에 연루될 수 있는 기회가 주변에 산재해 있어 돈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직무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달에만 연거푸 3번 금품수수 혐의 적발
지난 2월 17일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받기 직전인 15일과 16일 영업시간이 끝난 오후 4시 이후 각각 190억원과 185억원이 인출됐다.
금감원은 이중 상당 부분이 부산저축은행 임직원과 친인척 등 특수 관계인 200여명이 영업정지 조치를 미리 알고 돈을 빼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금감원 직원이 파견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불법행태가 자행된 것에 대해 금감원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지적되고 있다.
23일 대검중수부는 부산저축은행그룹 수사 과정에서 적발한 비리 혐의로 금감원 부산지원 수석조사역 3급 최모씨를 구속수사를 하고 있다.
최씨는 모 업체가 부산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이를 알선하고 수수료 명목으로 6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광주지검은 금감원 저축은행서비스국 2급 정모씨를 체포해 조사 중이다. 정씨는 보해저축은행 대표이사 오모씨에게서 ‘검사에서 선처해달라’는 명목으로 4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서울남부지검은 부실상장기업 P사의 110억원 유상증자 대가로 금품을 받은 김모씨 등 전ㆍ현 금융감독원 직원 3명을 구속기소했다.
금감원 4급 선임조사역을 지냈던 김씨는 P사의 유상증자를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3차례에 걸쳐 5억6000만원을 받았고 2008년 9월과 10월에 금감원 동료였던 황모씨와 조모씨에게 각각 3129만원과 1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유상증자에 성공해 대표와 관련자들이 불법이익을 챙겼지만 P사는 지난해 12월 상장폐지 됐다.
이에 금감원은 내부직원들의 비리척결을 위해 강력한 대책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최근 최수현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공무원들은 뇌물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지만 당장 유혹에 넘어가면 결국 더욱 많은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특히, 시장의 신뢰를 받아야 하는 금감원은 내부 직원들의 비리를 근절시킬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구조를 바꾸는 등 매우 강도 높은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금감원 구조에서 실효성이 있는 비리근절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구멍뚫린 IT보안 실태도 지적돼
한편, 금융기관 정보보안 감독도 구멍이 뚫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7일 현대캐피탈이 해킹을 통해 42만명의 개인정보와 1만3000명의 대출카드번호·비밀번호까지 유출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13일 농협이 지난 13일 전산 장애를 일으키면서 창구 입ㆍ출금과 예적금 거래, 무통장입금, 자동화기기(ATM) 등 은행 업무가 모두 중단돼 고객들이 큰 혼란을 겪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은행ㆍ보험ㆍ증권ㆍ저축은행 등 금융회사의 수는 1353개에 달하지만 IT 정보보안을 감독할 금감원 직원 수는 20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에 금감원은 IT검사조직 강화를 위한 조직개편 방안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대책회의에서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대해 금융위와 금감원 책임자를 불러 보고를 받고,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영업정지 전날과 전전날에 일부 간부들만 많은 액수를 인출할 수 있는가"라며 "사전정보에 의해 인출됐으면 환수조치를 취하고, 정보제공자의 처벌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