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린치나 골드만삭스와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을 벤치마킹해서 2020년까지 글로벌 IB로 성장하겠습니다.”
금융위기 이전 메릴린치나 골드만삭스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의 롤모델이었다. 하지만 열망의 대상이던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더 이상 투자은행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곳은 다른 회사에 팔렸고 또 다른 한곳은 생존을 위해 금융지주회사로 성격을 바궜다.
반면 수신을 기반으로 한 대형 상업은행들은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금융산업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계기로 변화하게 된다. 기업구조조정 업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장기적인 산업자금의 공급을 위해 ‘덩치 키우기’에 집중했던 투자은행들은 몰락한 반면 상대적으로 안정된 조달구조와 다각화된 수익구조를 토대로 했던 상업은행(CB)는 대형 부실 금융그룹들을 인수하면서 금융산업 재편을 주도한 것이다.
실제로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 등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하던 대형 투자은행의 몰락은 당시 국내외 금융업계에 충격을 줬다. 금융권 관계자는 “구조화 채권(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부실로 위기를 초래했던 미국 대형IB들은 몰락한 반면 주요 대형 상업은행들은 안정된 재무구조를 기반으로 금융산업 재편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투자은행의 몰락은 예견된 측면도 있다. 2000년 이후 지속된 저금리에 편승, 투기자금이 몰리면서 자금조달구조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헤매던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모기지를 담보로 만든 유동화증권(MBS)을 투자자들에게 판매했는데 주택 구매자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했고, 다시 엄청난 속도로 금융기관에 타격을 준 것이다.
이는 자금조달 능력이 없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골드만삭스가 자회사로 상업은행을 가질 수 있는 은행 지주회사로 변함으로써 자금을 조달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돼 부도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점만 봐도 수신 확보가 대형화한 은행의 생존을 결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영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웰스파고 등 주요 상업은행들은 안정된 자금조달구조와 다각화된 수익구조를 토대로 미국 내 주요 은행과 인수합병(M&A), 전략적 제휴 등을 추진하면서 대형화됐으며, 국내외에서의 지배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업은행 성격 유지했던 유럽= 투자은행이 급격한 몰락을 겪었지만, 미국 투자은행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것이다. 공격적인 성장전략을 취하던 유럽 은행들은 서브프라임 부실 여파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큰 타격을 받았지만 몰락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유럽의 경우 전통적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지 않은 채 종합금융그룹(UB)으로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UB는 상업은행 내의 한 부문으로 투자은행 업무가 속해 있다.
유럽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규제 때문에 보수적으로 IB 업무를 해왔지만 대신 상업은행의 자금력과 영업망을 활용해 성장기반을 다져왔다.
1980년대 중반 스페인의 작은 지방은행에서 출발해 유럽 최대 금융그룹으로 성장한 산탄데르는 UB 모델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산탄데르는 금융위기 이후 유럽 전역에서 위기에 빠진 금융기관들을 M&A 하면서 유럽 최대 은행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IB에 편중된 수익구조를 갖고 있던 도이치뱅크도 수익구조 다변화를 목적으로 유럽 내 대형 M&A를 추진한데 이어 미국, 중국 등에서도 M&A를 통한 사업 확대를 지속하고 있다. 서 수석연구원은 “도이치뱅크가 경쟁력을 보유한 CIB(상업투자은행)부문의 해외사업 확대를 위해 미국 헤지펀드관리서비스와 부동산 투자자문회사 인수, 중국과 러시아에 합작사 설립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