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부터 1990년까지 2703%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마젤란펀드를 운용한 피터린치는 46세 때 은퇴하며 아직도 월가의 전설로 남아 있다.
1944년 1월 19일 미국에서 출생하는 그는 우연한 기회에 주식을 처음 접하게 된다. 수학교수와 회계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사망한 뒤 11세 때 학비를 벌기 위해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당시 고객들에 주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게 계기였다. 이후 보스턴 대학에서 인문학, 정치학, 심리학 등을 공부했다. 당시 매수했던 타이거 항공의 주식이 몇 년 만에 5배 가까이 올랐고 이것을 바탕으로 펜실베니아 대학의 와튼스쿨(비즈니스 스쿨)에 진학한다.
그는 와튼스쿨 재학 중 비즈니스 스쿨에서 배우는 주식 시장과 관련된 내용의 대부분이 실제 현장과 거의 관계가 없다는 데에 허탈감을 느꼈다. 심지어 MBA를 비롯한 경영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더 훌륭한 투자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얘기했다.
이후 캐디시절 인연을 맺었던 조지 설리번 피델리티 사장과의 인연으로 1966년 25대1의 경쟁률을 뚫고 피델리티에 입사하면서 주식시장에 정식 입문했다. 그는 기독교 신자였지만 일요일에도 출근하며 일주일 내내 일하는 워커홀릭이었고 회사에서도 그의 능력을 인정 받았다. 1969년 정식 애널리스트고 변신했고 1977년에는 자산 2000만 달러의 마젤란펀드를 맡아 펀드매니저로 데뷔했다. 피터 린치는 소규모 펀드에 불과했던 마젤란 펀드를 미국 최대 펀드로 발전시켰다.
그때부터 90년 은퇴하기 전까지 그가 운용한 마젤란펀드의 누적수익율은 2703%였고 연평균 수익률을 29.2%에 달했다.
그가 은퇴한지 이미 20년이 넘었지만 마젤란펀드는 아직도 미국자산운용업계 No1. 펀드로 평가 받고 있다. 그의 운용시절 마젤란펀드는 연평균 29.2%의 수익률을 올렸고 특히 1980년도에는 한해 무려 70%의 수익을 거뒀다. 같은 기간 S&P500지수의 평균수익율은 15.8% 불과하다. 피터린치는 46세가 되던 해 그의 생일에 월가를 떠났고 전설로 남은 월가의 영웅으로 평가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