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낙동강 숨바꼭질…도심 피로도 ‘싹~’

입력 2011-07-26 11:30 수정 2011-07-2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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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걷고 싶다]②시간이 사라진 공간, 봉화 승부역 가는 길

▲사진=고이란 기자
한국의 가장 깊은 산골은 강원도에만 있는게 아니다. 낙동강이 시작되는 경북의 산골은 강원도보다 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시간도 역사도 잊혀져 버린듯한 곳, 산새들과 들꽃이 유일한 친구인 늙디 늙은 기차역이 있다. 세월도 지나쳐버린 듯한 느낌을 가진 이 곳. 바로 여행객들이 ‘육지 속의 섬’이라고 부르는 승부역이다.

경북 봉화군 중심에서 64km나 떨어진 승부역은 첩첩산중이다. 가는 길은 멀고도 깊다. 과거 강원도의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암선 철로의 한켠에 위치한 이 역은 석탄 산업이 쇠퇴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잦아든 자리가 텅 빈 채 남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승부역으로 향한 길은 도시에서 온 ‘단사표음(簞食瓢飮)’ 나그네에게 적지 않은 선물을 안긴다. 이곳을 걷는 이는 날 것 그대로인 새 피톤치트의 포장을 뜯는 기분으로 걸을 수 있다. 석포역에서 승부역까지의 거리는 짧지 않지만 내내 상쾌한 기분을 유지하며 걷게 된다.

길 위에서는 철도와 낙동강의 숨바꼭질이 계속된다. 길과 동행하던 철로와 낙동강 줄기가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길 반복한다. 그렇게 걷다가 등줄기에 땀이 흐를 때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지친 발걸음을 달콤하게 유혹한다. 낙동강 상류의 물은 열목어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맑다. 길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강물에 발을 담그면 도심의 피로와 무더운 여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승부역은/하늘도 세 평이요/꽃밭도 세 평이나/영동의 심장이요/수송의 동맥이다’ 승부역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한 편의 시 덕분이다. 1962년 이곳에 부임해 19년 동안 역무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김찬빈 씨가 쓴 시다. 시는 바위에 새겨져 지금도 승부역의 화단 한 켠에 놓여 있다.

승부역은 1963년 영암선이 영동선으로 바뀌고 이후 석탄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1997년 간이역으로 전락했다. 2001년에는 마주 달리는 기차가 교행을 위해 잠시 대기하는 신호장으로 바뀌면서 간이역이라는 이름마저도 역사속으로 사라질 뻔 했다. 10년 쯤 전 ‘환상선 눈꽃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고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들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붐비는 겨울 눈꽃열차 시즌에는 역사 건너편에 포장마차들이 들어서서 관광객을 맞이한다.

승부역에 왔다면 ‘영암선 개통비’를 한 번쯤 볼 만 하다. 이 깊은 산중에 철도가 쉽게 놓인 것은 아니다. 1955년 세워진 87km 영암선 구간은 그 시절 최대의 공사였다. 영암선 구간 중 가장 힘들었던 승부역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을 받은 비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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