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합리화조치 해제후 승용차 라인업을 완성한 기아산업은 1980년대말 국내 완성차 업계의 3파전을 완성해냈다. 소형과 준중형, 중형차 라인업에서 현대차와 대우차에 견줄 수 있는 걸출한 모델을 앞세웠다.
그러나 1980년대초부터 이미 소형차 노하우를 쌓기 시작한 현대차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기아차는 봉고에서 시작한 상용차와 RV 메이커로서의 장점을 살려 방향을 전환했다. 이것이 기아차 카렌스와 카스타, 카니발 등 '못난이 삼형제'가 등장하게된 계기다.
◇세피아를 베이스로 개발한 소형 미니밴 카렌스=기아차는 유럽에서 인기있던 르노의 소형 미니밴 '메간 세닉'에서 착안해 소형 미니밴 개발에 나섰다.
마땅한 플랫폼과 기술력도 없다보니 준중형 세피아를 베이스로 개발에 나섰다. 비슷한 컨셉트를 가진 도요타의 미니밴 '입섬'의 디자인도 참고가 됐다.
개발당시 세피아와 맞먹는 낮은 바닥은 스티로폼을 덧대는 무모함도 발휘(?)했다. 이렇게 등장한 차가 바로 카렌스다.
카렌스의 개발목표는 세피아를 바탕으로 기존부품을 최대한 활용해 개발비를 절약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둘째 개발비를 줄인만큼 수출보다 내수시장을 목표로 세웠고 당시 7인승 차에게 주어졌던 LPG연료 사용과 절세혜택을 충분히 누리고자했다.
그러나 카렌스 개발이 한창이던 1997년 기아는 부도유예협약이 적용됐고 그해 10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막바지 개발을 마치고 출시를 준비하던 카렌스는 모든 걸 멈춰야했다. 마침내 1998년 현대자동차에 인수됐고 이듬해인 1999년 6월 카렌스가 출시됐다.
◇현대정공의 카스타만 실패=비슷한 무렵 기아차를 인수한 현대차는 당시 현대정공(현재 현대모비스의 전신)의 미니밴 싼타모의 후속을 준비중이었다.
미쓰비시 미니밴 '샤리오'를 고스란히 들여온 싼타모는 본격적인 LPG와 7인승 혜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인기 몰이중이었다.
당시 현대차는 RV이미지가 강한 기아차 이름으로 싼타모 후속을 판매키로 했다. 생산은 현대정공이 판매는 기아차가 맡은 이유다. 이렇게 등장한 차가 기아차 카스타였다.
카스타는 카렌스보다 윗급으로 자리매김하고 편의장비를 늘려 고급 모델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시장은 냉담했다. 승용감각이 강했던 카렌스와 달리 어정쩡한 차 높이의 카스타는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카렌스와 비슷한 컨셉트를 지녔고 LPG와 7인승 혜택을 누리는 점도 카렌스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가격은 카렌스에 비해 경쟁력이 없었다. 각지고 투박한 디자인도 카스타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었다. 2002년 10월에 현대차 싼타모와 함께 후속모델 없이 단종됐다. 기아차의 미니밴 3총사 가운데 유일하게 현대정공이 개발을 주도한 카스타만 실패한 셈이다.
반면 정통 미니밴을 지향하며 이들보다 한 해 먼저 출시한 카니발의 인기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현대차에 인수되기 직전에 출시된 카니발은 법정관리 속의 기아차를 다시한번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기대주였다.
1980년대 벼랑 끝에서 봉고신화를 일궈냈던 기아맨들은 다시 한번 카니발을 앞세워 회사가 일어서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걸출한 상품성을 지닌 카니발도 기아차의 경영난을 극복하기에는 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