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보선 당일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DDOS) 공격이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의 9급비서 공모씨(27)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은 정치권 전체로 확산됐다.
초대형 돌발 악재를 만난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초상집이다. “총선은 끝났다” “쇄신 백날 하면 뭐하나” “당 간판을 내려야 한다” 등의 과격한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다.
쓰나미는 당장 지도부의 쇄신 논의를 집어삼켰다. 홍준표 대표는 4일 밤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예정됐던 쇄신론을 진척시키는 대신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사태 수습에 전력을 기울였다. 유승민·원희룡·남경필 최고위원은 “국정조사가 아닌 더한 것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일단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지켜본 뒤 후속대책을 논의키로 했다.
한나라당은 그러면서 “최 의원이나 당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며 공모씨 단독 범행임을 강조했다. 도의적 책임은 지겠으나 당 차원의 직접적 책임은 없다는 일종의 선긋기였다. 그러나 일개 수행비서가 저지르기엔 사건 성격이 너무 커 당내에서조차 “누가 이 말을 믿겠느냐”며 ‘혹시(?)’하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다.
원내 주요당직자는 기자에게 “예산안 처리는 물 건너갔다. 파장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며 “(정국) 주도권은 민주당으로 넘어갔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하다하다 이젠 집권여당이 국가기관까지 공격하는 어이없는 일로 번지게 생겼다”고 탄식했다.
민주당은 ‘호재’를 만난 표정이 역력했다. 즉각 행정안전위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는 등 신속 대응에 나섰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3.15 부정선거 이후 전대미문의 선거방해 공작”으로 규정짓고, 기세를 몰아 “꼬리자르기식으로 일관할 경우 국정조사와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압박했다. 당내에선 “한나라당이 구세주”라며 “고비마다 한나라당이 헛발질로 도와준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여야 표정이 명확히 엇갈리는 가운데 정치권의 눈은 경찰로 모아졌다. 경찰은 범행 당일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 홈페이지에 가한 사이버 공격 역시 공씨 일행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수사 보폭을 넓히고 있다. 특히 공씨가 범행을 전후로 의원실과 통화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수사범위 확대를 통한 배후 밝히기에 주력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공격이 332곳의 바뀐 투표소 위치 찾기를 주요 타깃으로 했다는 점에서 20~40대의 출근길 투표율을 떨어뜨리기 위한 의도가 있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동원된 좀비PC 수와 국가기관망에 대한 공격수준 등을 볼 때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해킹으로 위험부담을 감안했을 때 최소 1억원이상의 금전적 보상이 뒤따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은 “위험수당을 받지 않고선 이런 일을 절대 안 한다는 게 IT업계 관행”이라고 했고, IT업체 ‘나우콤’ 대표 출신인 문용식 민주당 인터넷소통위원장은 “(다른) 해커들을 만나본 바로는 최소 억대 이상 대가를 주고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은 4일 당 홍보기획본부장 사퇴 의사를 최고위원회의에 전달했으며 지도부는 이를 즉각 수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