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엔 환율이 11년 만에 최저권에 머물고 있음에도 일본 정부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로 가치는 유럽 채무위기가 갈수록 악화하면서 달러와 엔 등 주요 통화에 대해 기록적인 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엔에 대해서는 지난 16일(현지시간)까지 2000년12월 이후 최저치를 몇 차례나 갈아치웠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BOJ)은 유로에 대한 엔고에 대해서는 2003년을 끝으로 환율 개입을 단행하지 않고 있다. 달러에 대한 엔고로 수시 환율 개입을 단행하던 때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엔화 가치가 달러에 이어 유로에 대해서도 고공행진을 펼치면서 일본 수출 기업들의 시름만 깊어질 뿐이다.
일본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는 속내는 무엇일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신문은 첫째 국제사회가 일본 정부의 환율 개입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지난 2000년 공조 개입을 단행했을 당시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를 인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유로 약세를 막자는 무언의 합의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채무 위기가 금융기관의 활동을 위축시켜 실물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가운데 수출을 지지하는 유로 약세는 유로존의 유일한 호재이기 때문이다.
또 환율개입에 원래 부정적인 유럽 당국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도 환율 개입이 쉽지 않은 이유다.
ECB의 이사인 에발트 노보트니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는 18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유로 가치는 정상적인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유럽 통화당국 인사가 유로 악세를 용인하는 입장을 나타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신문은 일본 정부와 배치되는 인식을 가진 노보트니 총재의 발언을 일본의 환율 개입을 견제한 발언으로 풀이했다.
일본 정부가 유로에 대한 엔고 저지에 나서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유로 환율 자체를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유로·엔 시장은 달러·엔 시장과 달리 규모가 작아 당국이 유로를 사려할 때 유로를 내주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부담이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을 각오하고 개입을 단행하려면 유로 뿐만 아니라 달러에 대해서도 엔고가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작년 10월 대규모 개입으로 일본 기업들이 유로에 대해 올해 환율 헤지를 끝낸 것도 정부의 환율 개입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다.
경제가 위축된 대유럽 수출이 줄어 현재는 개입 가능성이 낮다.
다만 수입으로 엔고 부담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는 달러와 달리, 유로 약세 지속은 기업 실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만큼 정부의 관망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미지수다.
아즈미 재무상은 “(채무 위기 극복을 위해 유럽 당국자는) 자주적으로 대응해 주기를 바란다”며 일본 기업의 불만이 고조되기 전에 유로의 자율적인 반등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바클레이스는 18일 보고서에서 유로·엔 환율 하락이 일본 기업의 대유럽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단독으로 환율 개입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클레이스는 유로 매입을 통한 환율 개입은 달러에 치우친 일본의 외환보유고를 다각화하는 데 기여하고 엔고에 따른 디플레이션과 경기 하방 압력을 완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