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이 필요했던 정모씨는 지난달 말 생활정보지를 통해 알게 된 사채업자를 통해 50만원을 융통했다. 하루 이자 4%를 매일 꼬박꼬박 갚는 조건이었다. 그나마 50만원 중 21만원은 선이자 명목으로 먼저 떼어가고 손에 쥔 돈은 29만원에 불과했다. 그가 20일 남짓한 기간 동안 이자로 낸 돈만 140만원, 선이자까지 포함하면 연 5876%에 달하는 살인적 금리다. 정씨는 “연체하면 10분마다 이자가 1%씩 오른다”면서 “경찰에 신고해봤지만 별 진전이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시작한 지 이틀째인 19일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는 1592건의 피해신고가 들어왔다. 첫날인 18일 1504건을 포함하면 이틀 동안 3000건이 넘는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된 신고까지 포함하면 3300건이 넘는다.
접수된 내용을 보면, 동네 건달이나 조직폭력배를 다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불법 추심사례가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진 불법 사금융의 횡포에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박모씨는 지난 2002년 초 무등록 대부업체로부터 일수대출로 100만원을 빌렸다. 100일 동안 매일 1만3000원(대출금리 연 200%)을 갚는 조건이었다. 빌릴 땐 상환 부담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장사가 꼬여갔다. 결국 박씨는 빚을 갚기 위해 다시 사채를 썼고, 또 빚이 늘면 사채를 쓰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어느새 갚아야 할 빚은 2억원을 불었다. 박씨는 “사채업자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못했다”며 “제발 내 한을 좀 풀어 달라”고 말했다.
대출 사기를 당한 서민들도 부지기수다. 충북 음성군의 한 40대 자영업자는 “급전대출 광고지를 보고 전화해 6000만원을 빌리려 했더니 선이자로 600만원을 보내라고 하더라. 600만원을 보냈더니 연락을 끊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신고가 폭주하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정부의 감독 사각지대로 방치돼온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의 신고가 한꺼번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많다. 김석 금감원 서민금융지원실 팀장은 “신고자들은 한결같이 ‘혹시 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하나. 빚 독촉에 시달리는 것도 무섭지만 이렇게 전화한 게 알려질까 봐 더 무섭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신고센터는 5월 31일까지 운영된다. 금감원은 신고자를 대상으로 유형별 상담을 실시한 뒤 자산관리공사나 신용회복위원회로도 연결해 맞춤형 상담이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