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벚꽃의 비밀’…군국주의 그림자

입력 2012-08-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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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상징적 공간인 국회 주변에 왜 일본의 나라꽃이 심겼을까?’라는 의문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일간지 기자인 저자는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 국회 주변을 뒤덮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의문을 품고 집필에 나섰다.

100여년 전 일제에 의해 한반도에 상륙한 벚나무는 해방 이후 뿌리째 뽑혀 나가는 ‘청산’ 대상이었지만 1960년대 들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재일교포와 일본인이 대거 기증에 나선 결과였다. 일본의 기업인, 언론인 등 영향력 있는 일본인과 일본 기업들이 기증에 참여했다.

일본인들은 왜, 무슨 뜻으로 벚나무를 기증한 것인가. 벚꽃의 비밀<에세이퍼브리싱 펴냄. 정가 1만5000원)이 궁극적으로 풀고자 한 의문이다. 한일 친선인가, 군국주의 향수인가.

일본은 과거 벚꽃마저도 정책 수단으로 정교하게 활용했고, 지금도 여전히 정치적으로 활용하는데 그들이 기증한 벚꽃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봐도 괜찮은지, 그러는 것이 일본인들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저자는 제국주의 이 후 벚나무 수출에 숨겨진 일본의 정치적, 군사적 비밀을 꼼꼼히 파헤친다.

벚꽃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봄꽃이다. 올 봄 삼성에버랜드 조사에서 한국 성인남녀 100명중 45명은 가장 좋아하는 봄꽃으로 벚꽃을 꼽았다. 2위 개나리(27%)와 격차가 컸다. 그러나 좋아하는 만큼 벚꽃을 잘 알지는 못한다. 벚꽃이 언제, 어떻게 심겼는지 그 역사는 알지 못한다. ‘벚꽃의 비밀’은 이 땅의 벚꽃 역사를 추적한 논픽션이다.

저자는 자료와 증언을 확보하면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벚나무는 100년전 일제에 의해 심겼고, 해방 이후 베어져나갔다. 성난 조선 대중의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이다. 벚꽃이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탓이다. 그런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진해 벚꽃도, 전군가도의 벚꽃도 뽑혀나간 자리에 다시 심겼다. 국회 주변에도 뿌리내렸다. 1960년대 들어 재일교포와 일본인이 대거 기증에 나선 결과였다. 일본의 기업인, 언론인 등 영향력 있는 일본인과 일본 기업들이 기증에 참여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주목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시에 세워진 위안부 추모비에 대해 일본이 철거를 요구하면서 벚나무 기증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과거사를 덮는 조건으로 벚나무를 선물하겠다는 말이다. 그들은 여전히 벚꽃을 군국주의 연장선에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벚꽃은 정치·군사적 꽃이었다. 일본 군국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정책이었다. 일본 군사정권은 침략 전쟁에 벚꽃을 끌어들였다. 이데올로기를 뒤집어쓴 벚꽃은 일본과 식민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천황을 위해 사쿠라 꽃잎처럼 지라”는, 그 유명한 문구는 젊은 생명들을 앗아간 무서운 레토릭이었다. 식민지 영토에 꽂혀 일본 제국령을 알렸다. 벚꽃은 그렇게 일본 군대와 함께 행진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기증의 순수성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성과 사과가 전제되었다면 한일친선의 의미는 분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과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패망 이후 반성의 시간을 제대로 갖지 않은 결과이다. 일본은 과거사를 덮고 극우화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벚꽃 기증의 의미도 이 흐름에 맞춰 해석될 수밖에 없다. 벚꽃은 여전히 해방되지 않았다. 일본 군국주의 역사의 먼지를 털어내지 못했다. 온전히 아름다운 자태 그대로의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벚꽃을 없애야 한다거나 즐기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일본은 과거 벚꽃마저도 정책 수단으로 정교하게 활용했고, 지금도 여전히 정치적으로 활용하는데 그들이 기증한 벚꽃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봐도 괜찮은지, 그러는 것이 일본인들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이 책은 한일 100년사에 묻힌 ‘벚꽃의 비밀’을 풀기 위해 ①해방후 일본인은 왜, 무슨 뜻으로 벚나무를 기증한 것인지②한국은 그 벚나무를 무슨 생각으로 받아 심은 것인지③일본인에게 벚꽃이란 무엇이었는지④벚꽃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일본 군국주의 상징이 되었는지 하나하나 추적했다. 대목마다 관련 사진들도 하나하나 수집해 물렸다. 특히 특무대장으로 권력을 휘두르다 암살된 김창룡과 함께 찍은 박정희 대통령의 1950년대 사진은 필자가 입수한 미공개 단독 자료이다.

◇일본의 나라꽃, 군국주의 정책이 되다

벚꽃은 오래전부터 일본의 문화적 내셔널리즘의 상징이었다. 이미 9세기경 중국인과는 다른 일본인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되었다. 1천여년 전부터 벚꽃은 일본의 나라꽃이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 일본 대중의 삶에 깊숙이 침투한 벚꽃의 다양한 이미지가 축적되면서 일본 특유의 정체성을 형성한 결과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 벚꽃은 단순히 나라꽃이 아니라 정치·군사적 꽃으로 변질됐다. 군사정권은 벚꽃의 상징성을 식민지 전쟁에 적극 활용했다. 상징 조작의 밑거름은 이미 일본 벚꽃 역사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쌀, 여자, 생산력, 생식력, 삶, 죽음, 환생과 같은 인간 관계와 인생의 과정이 이미 거기에 담겨 있었다. 군사정권은 이 같은 풍부한 벚꽃의 상징성을 정교하게 재구성했다. 죽음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벚꽃의 낙화는 ‘천황을 위한 전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일본 대중에게 각인됐다.

◇식민 문화정책, 창경원 벚꽃놀이

일제는 조선 영토를 벚꽃으로 장식했다. 내지(內地)화, 즉 일본의 영토화였다. 조선의 민족성을 없애려는 문화 정책이기도 했다. 일제는 먼저 창경궁을 오락장으로 만들었다. 이름을 창경원으로 바꾸고 백성에게 개방했다. 그곳에 벚꽃을 심었고 벚꽃놀이를 전파했다. 왕실의 권위와 조선의 민족성을 동시에 해체하는 작업이었다.

◇제주도 원산지설

제주도 원산지설은 벚꽃에 대한 한국인의 불편한 감정을 희석시켜주는 유일한 근거이다. 일제가 가져다 심은 왕벚꽃은 제주도에 자생하던 것이라는 게 그 내용이다. 그러나 원산지설만으로 벚꽃은 원래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몰역사적이다. 벚꽃이란 자연은 여러 나라에 분포한다. 북반구의 아열대 또는 온대지방에 분포하는 식물이다. 종류도 200가지가 넘는다.

게다가 원산지설은 여전히 논란중이다. 국내에서는 정설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아니다. 왕벚꽃이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언제 어떻게 건너갔다는 것인지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여기에도 내셔널리즘이 작용한다. 한국 식물학자들은 제주도 원산지설을 정설로 받아들이지만 일본 식물학자들은 오오시마 벚나무와 에도히간 벚나무의 교배설을 주장한다.

◇벚나무 기증에 나선 일본인들은 누구

필자가 입수한 ‘재일본동경진해유지회’의 묘목 기증 기록은 진해 ‘벚꽃의 비밀’을 풀어준 열쇠였다. 이 기록과 진해웅천향토문화연구회 황정덕 회장의 소장 자료에 따르면 1966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재일교포와 일본인들이 벚나무 묘목 약 6만그루를 진해시에 기증했다. 여기엔 재일교포와 일본의 중견 언론인, 식물학자, 관광회사 간부 등 일본인들, 그리고 기업이 협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구체적으로 히가시 노부오(東信夫·사망·당시 50대) AP통신 도쿄지국장, 구니미쓰 가즈시게(邦光一成·사망· 당시 40대 후반) NHK 프로듀서 등 중견 언론인 7명과 식물학자 나카무라 쓰네오(中村常男), 묘목업자 우다가와 다케오(宇田川猛夫), 요미우리신문 기자 출신의 관광회사 간부, 마스다 유키히코(增田幸彦·70), 외교평론가 大前正臣 등 모두 15명이 기록돼 있다. 협찬 기업으로는 후지쓰(富士通)주식회사, 도쿄항공, 일본컨설턴트협회 등 9개 기업·단체가 기록돼 있다.

이렇게 거의 모두 영향력 있는 엘리트 그룹이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국회뒷길에 심긴 벚나무는 1971년 기증된 것인데 기증자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서울시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재일교포 한 분”이라고 저서 ‘서울도시계획이야기’에 기록했다. 그러나 구로다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재일교포가 아니라 한일친선협회”라고 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벚꽃 취향은 왜 정반대였나.

해방후 벚꽃의 수난과 부활의 흐름엔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의 벚꽃 취향이 투영돼 있다. 이승만 집권 시절 벚꽃은 찬밥 신세였다. 벚꽃 관리 예산은 삭감됐다. 해방과 함께 시작된 수난의 연속이었다. 벚꽃이 부활한 건 박정희 정권 들어서다. 박 대통령은 벚꽃을 좋아했다. 진해, 서울 강변북로에 “벚꽃을 심으라”고 직접 지시도 했다. 여의도 국회 뒷길에 벚나무가 심어진 것도 그의 지시이거나 의중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여의도는 전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뜻대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주변 조경도 박 대통령이 직접 신경쓴 것이냐”는 물음에 “물론이다”라고 답했다. 벚꽃을 놓고 엇갈리는 두 사람의 취향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두 사람의 해방전 이력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

벚꽃엔 역사의 악연이 숨어 있다. 여의도 국회에서, 진해에서 원수같은 역사가 마주쳤다. 벚꽃은 한국과 일본의 악연을 잇는 역사의 외나무 다리와 같다. 여의도 국회 뒷길의 벚꽃은 미국 워싱턴 포토맥 강변의 모방이다. 포토맥 강변의 벚꽃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관련이 깊다. 미국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해준, 즉 한국 사망증명서에 날인해준 밀약이다. 진해의 벚꽃도 역사의 악연이 충돌하는 현장이다. 왜적을 물리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군항제는 활짝 핀 벚꽃속에서 열린다. 일본인이 기증하고 정성껏 보살폈던 벚꽃이다. 눈부신 벚꽃은 충무공의 정신을 가린다. 벚꽃철 진해를 찾는 이들에게 관심사는 벚꽃이지 이순신 장군이 아니다.

[저자 소개]

1965년생. 고려대 무역학과,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졸업. 1992년 세계일보 입사. 정치부장, 경제부장 거쳐 논설위원으로 재직중. (연락처 02-2000-1616, 010-2781-5371)

[목차]

1.두 얼굴의 벚꽃

벚꽃 100년史에 찍힌 물음표

침략의 징표

우정의 선물

2.역사의 아이러니

국회 벚꽃과 카쓰라·태프트 밀약

이순신 vs 도고 헤이하치로

전군가도 벚꽃과 일제 곡물수탈

역설의 함의

3.이승만 vs 박정희

벚꽃을 좋아한 박정희

벚꽃을 싫어한 이승만

이승만의 일본지우기, 박정희의 일본베끼기

4.이념에 물들다

일본의 나라꽃

벚꽃의 풍부한 상징성

메이지유신

벚꽃, 군국주의에 물들다

그밖의 장치들

5.조선을 벚꽃으로 메이크업하다.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개방된 ‘순종의 오락장’

벚꽃놀이에 담긴 의도

한·일 꽃놀이 역사

사쿠라 세상

6. 벚꽃에 취하다

조선대중을 사로잡은 축제

-벚꽃 아래 사랑

-가수 김정구의 앵화폭풍

-술 취한 여종업원과 벚꽃 도둑

-평양부윤 구타사건

벚꽃놀이에 대한 비난

위안부의 벚꽃

벚꽃이 된 카미카제

벚꽃에 속은 세월

7. 벚꽃의 수난

되찾은 자유, 폭발한 분노

증오의 대상, 벚꽃

다시 피는 무궁화

8. 벚꽃, 다시 현해탄을 넘다

벚꽃의 부활

묘목 기증에 나선 일본인들

돈은 누가 댔나

그들은 왜 벚나무를 실어 날랐나.

일본인의 열정, 한국인의 반감

원산지 문제가 아니다

-벚꽃 논쟁도 내셔널리즘?

-일본학자는 왜 제주도 원산지설을 주장했나

계속되는 논쟁

벚꽃기증의 함의

9. 군국주의 그림자

반성은 없다

되돌아온 전범들

빨갱이 사냥

일본전범, 한국전에 참전하다

과거에 발목잡힌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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