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국가 중 커피 수입량 2위인 이탈리아의 커피수요는 지난 6년래 최저치를 기록했고, 스페인의 1인당 커피 소비량도 5~6년 수준으로 줄었다. 커피 수요가 줄어들자 유럽에서 팔리는 아라비카 커피가격도 지난 해에 비해 43%나 떨어졌다.
하루나 지났을까? 공교롭게도 한국의 한 커피전문점은 커피값을 기습 인상했다. 업계 5위 ‘할리스’가 총 47종의 메뉴 가운데 43종의 가격을 100~300원 가량 올리기로 한 것이다. 카페아메리카노는 3600원에서 3900원으로, 카푸치노는 4200원에서 4500원, 카페모카는 4800원에서 4900원으로 인상됐다. 지난해 10월 한 차례 가격을 올린 후 채 1년도 안된 시점이다.
지난 4월부터 커피전문점 가맹본부의 인테리어 리뉴얼 강요와 가격 담합 여부 등 전방위적 조사가 진행된 가운데 단행된 가격인상이라 소비자들의 관심은 더욱 높았다. 특히 발표 전날 공정위는 조사요원을 파견해 커피전문점 매장수 1위 카페베네와 이디야 등의 현장 실사를 마친 상태였다.
정부가 이처럼 커피 가격 관리에 적극적인 이유는 전국의 커피전문점이 지난해 1만 곳을 넘어서고 매출도 2조원을 돌파하면서 커피가 ‘국민음료’가 됐기 때문이다. 물 다음으로 마시는 양이 많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불고 있는 커피 광풍은 정치권에서도 웃지 못할 논쟁을 양산했다.
지난 8월 통합진보당에서 구당권파와 신당권파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구당권파 백승우 전 진보당 사무부총장은 “유시민 전 대표와 심상정 의원의 공통점은 회의 전에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는데, 비서실장이나 비서가 커피숍에 나가 포장해 사온다는 것”이라며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어야 회의를 할 수 있는 이분들을 보면서 노동자·민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의아할 뿐”이라고 비꼬았다.
이에 대해 유 전 대표는 “누가 ‘부르주아적 취향’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며 “한 번 뿐인 인생인데 이런 소소한 즐거움 조차 누릴 수 없다면 좀 슬프지 않을까”라며 맞받아쳤다.
‘커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아메리카노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게 좀 의아하긴 했지만, 커피가 권력 다툼의 소재로 사용된다는 것 자체가 커피의 현재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커피의 인기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시원한 아이스커피로 변하는 아이디어 제품도 탄생시켰다. 커피전문점에서 방금 테이크아웃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보이는 이 제품은 컵 안에 커피맛 얼음조각이 하나 가득 들어있다. 한 제과회사는 컵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3초 만에 얼음이 동동 뜬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변신하는 제품을 지난 여름부터 판매했다.
15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을 먹은 후 두 배가 넘는 39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하는 직장인들. 하루 10봉의 커피믹스를 마신다며 스스로 ‘믹스 중독자’라 이야기하는 자영업자. 커피전문점 커피도 정형화됐다며, 새로운 맛을 찾거나 집에서 직접 내려먹는 커피 매니아들. 만화방을 떠나 24시간 커피전문점에서 밤을 새우는 올빼미족들 등등.
2012년 10월, 커피에 둘러쌓인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세 페이지에 걸쳐 이야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