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변에서 재무설계사들을 흔히 만나게 되며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다 보험을 판매하는 홈쇼핑을 만나게 된다. 심지어 원치않는 전화와 같은 다이렉트마케팅 등을 통해서도 접하게 되는 것이 보험이다. 나는 이렇듯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판매, 유통되고 있는 수많은 보험상품들이 이러한 의학 발전이 낳은 결과물일지도 모르며, 우리는 어쩌면 이러한 보험의 홍수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으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문명과 단절된 삶을 추구하는 자연인이 아닌 사회적 존재라면 이러한 사회적 강요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인다. 나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문제는 내가 그 보험이라는 것에 대한 필요성 내지는 당위성에 대해서 단 한번도 절실히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발생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한 대비", "손실을 전제한 투자", 이것이 보험에 대한 지금까지의 내 나름의 정의였다. 적어도 나는 - 건강하다고 자부해왔었기에 - 그랬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곤 했었다.
나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지난 10월 16일. 내 평생의 반려자이자, 아직은 많이 어린 내 딸아이의 엄마, 내 아내에게서 암덩어리가 발견되었다고 선고 받은 날이다. 다양한 종류의 암 중에서는 "불행 중 다행"에 해당하는 갑상선암이었지만, 여지껏 큰 병치레 없이 건강히 살아온 아내에게, 그리고 그녀가 온전히 내 삶의 절반이 되어버린 나에게 "암"이라는 그 한 음절 단어가 주는 공포감과 절망감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하지만 가장으로서 중심을 잡아야 했던 나는 마음을 다잡고 빠르게 머릿속을 정리해 내려갔다. 갑상선암? 수술 방법? 병원 선택? 담당의사? 아내의 직장? 아기…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떠올리고 있었고 그 중 '보험'도 있었다.
지금 나는 아내가 수술 후 머물고 있는 병원 입원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점에 가입했던 몇몇 보험 덕에 경제적 부담은 덜어내고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서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입원비에 대한 걱정도 접어둔 채 편한 마음으로 아내의 회복을 지켜보고 있다.
역시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었다. 사람에게 경험만큼 확실한 교육방법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험에 대해 한 달 전의 나처럼 생각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이 글이 그들에게 '한 번 더' 생각해 볼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보험은 "강요가 아닌 필요", "필요를 넘어선 필수", "내 (가족의) 삶에 안정감을 주는 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