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후코리아는 다음과 네이버의 급부상으로 인해 2000년대 중반무렵 3위권으로 밀려난 뒤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초고속 성장을 거듭한 네이버는 다음마저 추월한 뒤 사실상 대한민국 인터넷산업을 평정했다. 야후 본사가 한국시장 철수를 공식 발표한 날 네이버와 야후코리아의 점유율은 각각 76%와 0.2%이었다. 주요 언론매체보다 일일 방문자수가 적었던 야후코리아가 사업을 존속한다는 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야후코리아의 퇴장은 한국 시장 진입 초기부터 고압적이고 오만한 경영·영업 스타일이 자초했다는 평가다. 2000년 3월 인터넷기업협회 초대회장을 지냈던 닷컴 벤처 원로는 페이스북을 통해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막 시작된 인터넷협회의 위상을 올리려면 무엇보다 대형 포털업체를 회원으로 모셔와야 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야후코리아를 가입시켜야 위상이 강화되는 것이었다. 당시 야후코리아 사장은 국제상사 출신. 어느 정도 아는 사이였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야후코리아 본사를 무작정 찾아가서 그를 만나려했으나 회의중이라 한참을 기다려서 만났다. 간곡한 가입 부탁을 하고 돌아갔지만 가입 승락을 얻지 못했다.” 야후코리아는 2000년 증권정보코너를 개설하면서 증권사들에게 고액의 입점료를 선착순으로 받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하지만 증권정보에 액면 분할 등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게 드러나자 증권사에서 전문가를 스카우트 한뒤 허겁지겁 전면개편에 나서기도 했다.
정부 당국자들도 국내 포털보다 야후의 움직임에 더 신경을 썼다. 2003년 당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인터넷업계 현장 탐방 계획을 네이버에 사전에 알렸지만 방문 당일 급작스레 취소했다. 방한중인 야후 설립자 제리 양과의 면담일정이 갑자기 잡혔기 때문이다. 후일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오찬 모임에서 만난 진 장관에게 “야후 사람을 만나느라 저희 회사 방문을 취소하셨다”며 서운해 했다는 후문이다.
야후 미국 본사 역시 한국 인터넷 정서에 대해 무관심했다. 전략적인 결정을 제 때 내리지 못하는 실수도 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 초반 야후코리아의 아이러브스쿨 인수 무산이다. 포털과 커뮤니티 서비스 간 결합이 막 시작된 때여서 당시 인수가 성사됐더라면 야후코리아의 위상이 이정도까지 추락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야후의 한국 시장 철수는 미국 등 글로벌시장에서 포털사업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후의 시가총액은 애플이나 구글에 비해 수십분의 일 수준에 불과하다. 심지어 페이스북의 30%에도 못미친다. 여기에 모바일과 클라우딩 사업이 차세대 유망주로 급부상하고 있어 향후 전망마저 불투명하다.
국내 포털산업은 미국에 비해 견고한 시장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야후의 한국 시장 포기에서 보듯 인터넷산업은 이제 유선에서 무선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클라우딩은 포털 속에 안주하던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고객경험을 선사해줬다. 스마트기기를 통해 정보와 업무 그리고 사회적 교류까지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구글과 애플이 주도하는 모바일생태계에서 국내 포털업체들의 위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다음이 야후를 꺾는 데 활용했던 애국심 마케팅도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시작된 인터넷의 새로운 흐름은 개방 상생 공유로 정리되고 있다. 페이스북 계정만 있으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있는 다양한 신종사업이 우후죽순처럼 자라고 있다. 폐쇄적인 환경과 기득권에 매몰된 국내 포털들의 초심회복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