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특허권을 두고 전세계에서 경쟁업체들과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특허전쟁이 결국은 ‘혁신’을 방해하는 무기로 전락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애플의 특허전쟁의 시작은 싱가포르의 MP3P업체 크리에이티브가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에서 패해 1억 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했던 2006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이후 “아이폰과 관련해 모든 것을 특허화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특허 출원에 열을 올렸다.
지난 2008년 10월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사용한 첫 스마트폰이 HTC를 통해 출시된 이후 잡스는 “안드로이드는 iOS를 베낀 도둑놈들”이라며 “자금을 모두 투입해서라도 안드로이드를 박살낼 것”이라며 특허전쟁을 선포했다.
애플은 이에 따라 지난 2010년 3월 HTC를 시작으로 모토로라와 삼성전자 등에 디자인과 사용자환경(UI) 관련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은 지난달 초 HTC와 특허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해 합의하고 모토로라와도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삼성과는 여전히 전세계 총 9개국에서 50여건의 특허소송을 진행 중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애플의 공격적인 특허소송이 혁신을 멈춘 애플의 내부적 위기감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들은 노키아·알카텔루슨트·에릭슨 등 새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해 몰락 중인 기업들이 특허권을 방어 무기로 삼은 것을 예로 들며 특허는 선발기업이 주로 후발기업의 발을 묶기 위해 쓰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10년 동안 PC를 비롯해 MP3·스마트폰 등과 관련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 특허를 신청해 총 4100여개의 특허를 취득했다.
애플은 이에 그치지 않고 특허소송 전문회사를 설립해 정보·기술(IT)업계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다. 이는 IT벤처들의 창업 의지를 꺾는다는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애플이 특허소송에 집착할수록 경제적 손해는 물론 이미지 타격 등의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스탠퍼드대학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스마트폰 업계에서 특허 소송으로 발생한 비용은 약 200억 달러(약 2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군다나 애플은 지난해 연구개발 예산보다 특허 매입과 소송에 더 많은 투자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은 그동안 ‘혁신’을 추구하며 특허를 보호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실제 특허소송 결과 애플이 주장한 것들 중 특허로 인정받은 사례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도 특허전쟁의 명분을 갉아먹는 배경이라는 평가다.
미국 특허청은 최근 애플의 핵심 특허인 바운스백(특허번호 381)과 ‘잡스 특허’로 불리는 멀티터치(특허번호 949)에 이어 핀치투줌(특허번호 915)까지 잠정 무효 결정을 내렸다.
가장 최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북부법원의 루시 고 판사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을 미국에서 영구 판매금지 해 달라는 애플의 요청을 기각하면서 애플의 기를 꺾기도 했다.
법원은 삼성 제품이 애플의 특허를 침해한 것이 애플에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줬다고 볼 수 없고 애플의 피해와 삼성의 특허 침해 간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애플이 이러한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애플 입장에서 특허전쟁을 통한 가장 큰 손해는 이른바 ‘애플빠’로 불리는 충성 높은 고객들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헤이든 쇼네시 포브스 전문 기고가는 최근 “미국에서 삼성과의 특허소송 평결 이후 애플의 평판이 더 나빠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애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증폭되면서 충성 고객들의 애플 제품 구매 의향도 위축했다고 쇼네시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