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2일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하는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이하 택시법’ 개정안)'을 거부키로 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여야는 이명박 대통령이 택시법에 대한 거부권을 최종 행사할 경우 재의결 절차를 밟을 전망이다. 다만 민주통합당이 즉각적인 재의결을 주장하는 한편 새누리당은 민주당과 택시업계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한 뒤 최종 입장을 정한다는 방침이어서 입장 조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택시업계 4개 단체는 이날부터 비상대응체제에 돌입, 파업 여부와 시기 등을 결정할 방침이어서 또다른 파란을 예고했다.
정부는 22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택시법 공포안’과 ‘재의요구안(거부권 행사 안건)'을 심의한 뒤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종 서명하면 재의요구안은 확정된다.
임종룡 국무총리 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택시법은 입법취지 및 법체계상 문제점이 있다"며 "`대중교통'이란 대량수송이 가능한 교통수단이 일정한 노선과 시간표를 갖고 운행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택시는 개별교통수단으로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통혼잡 및 환경오염 방지, 에너지 절감 등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려는 대중교통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며 "외국의 사례를 봐도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한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점에 대해 임 실장은 "대통령이 재의요구안을 재가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오늘 중으로 재가를 하면 빠른 시일 내에 국회에 이송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국회와 택시업계와의 갈등을 불사하고 거부권 행사를 결정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재정부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현재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유가보조금 및 세제 지원 등을 통해 택시업계에 지원하는 금액은 2011년 기준 8247억원이다. 택시법 통과로 택시업계가 버스 수준의 재정지원을 요구하면 환승 할인, 개별 택시회사에 대한 적자보전, 소득공제, 택시 공영차고지 지원, 감차보상, 택시승강장 설치, CNG차량 개조비용 등으로 총 1조원 이상의 재원이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주성호 국토해양부 2차관은 22일 국무회의 후 "택시업계가 버스 수준의 재정지원을 요구하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과도한 재정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택시법에 반대한 또 다른 이유로는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 수 있다. 여객선이나 항공기, 통근ㆍ통학에 이용하는 전세버스는 일정 노선과 시간표를 갖추고 대량으로 승객을 수송한다. 이 때문에 택시보다는 오히려 대중교통에 더 적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자영업자인 개인택시의 영업손실을 국가나 지자체가 보전해주면 다른 자영업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 사안을 고려해 이 대통령이 택시법 거부안에 실제 서명할 경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사례는 제헌국회 이후 72건째다. 1948년 9월30일 이승만 대통령이 양곡매입법안에 첫 번째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시작으로 제헌국회 14건, 2대 국회 25건, 3대 국회 3건, 4대 국회 3건, 5대 국회 8건, 6대 국회 1건, 7대 국회 3건, 9대 국회 1건, 13대 국회 7건, 16대 국회 4건, 17대 국회 2건, 19대 국회 1건 등이다.
8ㆍ10ㆍ11ㆍ12ㆍ14ㆍ15ㆍ18대 국회에선 거부권 행사가 단 한 건도 없었으며, 현 정부에서 거부권이 행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국회 행정안전위가 '입법로비'를 허용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기습 의결한 것에 대해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처리되지는 않았다.
다만 변수는 있다. 여야 모두 택시법을 재의결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이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해 이송하더라도 국회에서 재의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재의결에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