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내각을 특징 짓는 핵심 키워드는 ‘전문성’이다. 여기에 방점을 찍은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다. 30여년간 외교부에 몸담은 정통관료 출신의 ‘외교통’인 윤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 분야 핵심 브레인으로 꼽힌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의 골격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밑그림도 그가 그렸다.
윤 장관은 지난 수년간 박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오며 외교안보분야 전문가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외교부 정책 추진에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위협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시작도 하기 전에 시험대에 오르게 돼 새 정부 첫 외교장관으로서 짊어져야 할 부담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료출신 외교안보통…‘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입안 주역=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976년 외무고시(10회)에 합격해 외무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주시드니 영사, 주유엔 참사관, 외무부 북미1과장, 아태국 제2심의관, 북미국 심의관, 주미국 공사, 외교통상부 차관보 등을 지내 북미와 국제기구 업무에 두루 밝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8년 한·일 신어업협정 협상에서 한국 측 수석대표로 활약했고, 주제네바 대표부에 근무하면서 다자업무에도 관여했다. 외교전문가 그룹 중에선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꼽힌다.
윤 장관은 2004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장을 거쳐 외교부 차관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참여정부의 대표적 외교안보통이다. 박 대통령과는 참여정부가 막을 내린 후 서강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를 지내면서 박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인맥과 끈이 닿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박 대통령에게 몇 차례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조언을 해주면서 인연을 맺게 됐으며 지난 2010년 말 박 대통령의 정책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사실상 ‘박근혜 사단’에 합류했다. 박 대통령이 2011년 ‘포린 어페어스’ 9·10월호에 게재한 ‘신뢰외교’를 기초로 한 대북정책에 대한 기고문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후 미래연의 외교안보 그룹에서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근간이 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를 성안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선 경선 캠프에서는 정책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대선 캠프에선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외교통일 추진단장을 맡아 외교안보 정책을 다듬었다.
하지만 윤 장관이 미래연 발기인으로 참여했을 때 캠프 일각에서는 비판적인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가 참여정부 시절 인사라는 점 때문이었다. 윤 장관이 미래연에 합류할 무렵 주변에선 “노무현 정부 인사인데 같이 해도 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박 대통령은 “정책에 이념이 있나요”라는 말로 대신했다는 후문이다.
윤 장관도 역시 대선 기간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참여정부 출신임에도 당시 문재인 후보 대신 박근혜 후보를 택한 이유에 대해 “외교안보 분야에선 직업 외교관들이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을 보좌하는 게 오랜 전통”이라면서 “당파적 이해나 이념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탁월한 능력의 소문난 워커홀릭…북핵 사태로 중압감 커질 듯 = 윤 장관은 우리나라가 현재 당면한 다양한 관련 현안들을 지혜롭게 풀어가는 데 적합한 인사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다양한 경험은 물론, 종합적으로 조망·조정하는 폭넓은 시야와 균형감각을 갖췄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도 “외교부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대외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 때의 외교안보수석 경험을 바탕으로 새 정부에서도 외교안보 정책 추진에 있어 눈에 띄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행추위 출신의 한 인사는 “체계적이고 꼼꼼하며 워커홀릭으로도 정평이 났다”며 “화를 잘 내지 않고 일방적인 지시보다는 아랫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업무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등 소통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고 평했다. 그는 서강대 교수 시절 현직 교수를 제치고 강의평가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윤 장관은 남북 교류협력 필요성을 강조한 인사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까닭에 북한의 핵실험 강행과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등으로 위기 국면에 빠진 남북대결 국면에서 유연한 해법을 찾아낼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한반도 안보에 낀 먹구름이 좀처럼 걷히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북핵 위협으로 자신이 입안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수정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고민일 수 밖에 없다.
윤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북핵문제 해결 방법을 묻는 질문에 대화와 협력, 안보가 종합적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투트랙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략대북제재와 관련해서는 핵 무장론이나 군사적 제재에 대해 반대하면서 대북특사 파견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15년 만에 통상 기능이 사라진 외교부를 이끌어야 하는 부담감도 크다. 하지만 그는 “통상 기능이 신설되는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되는 것은 대통령직인수위가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쳐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별다른 이견을 표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