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축출될 때만 해도 이집트에는 진정한 ‘아랍의 봄’이 찾아온 듯했다. 새로운 리더십과 함께 자유와 평화의 기운이 넘쳐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이집트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1년 전 직접 선거를 통해 추대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도 무바라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 권한 강화와 이집트의 이슬람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려다 반대 세력의 저항을 자초했다.
민생은 더욱 팍팍해졌다. 무르시가 자신만의 거탑을 쌓는 동안 경제 파탄은 소리 없이 다가왔다.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외환보유고는 감소했다. 재정은 국제사회조차 도움의 손길을 포기할 정도로 곪았다. 물가 상승은 계속되고 청년 실업률은 40%를 넘었다. 폭염 속에 정전이 밥 먹듯이 일어나면서 배고픈 시민들을 폭도로 만들었다. 결국 무르시는 시민들을 앞세운 군부의 반란으로 1년 만에 정권에서 쫓겨났다.
무르시의 실각은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의 궤도에 오르려는 인근 국가에 무서운 전례를 남기게 됐다. 민심에 부합하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언제든 군부가 축출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된다는 점에서다.
문제는 군부가 이집트 정권을 이대로 장악하면 상황은 더욱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2년 전 이집트 혁명에서 군은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힘없는 서민들이 ‘현대판 파라오’로 군림한 무바라크에 대항할 수 있었던 건 군이 방패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군은 시민들의 편에 서서 무르시 축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군부가 시민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것으로 비쳐지지만 자칫 군부독재를 부르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군부의 쿠데타는 정권이 불의하거나 무능력할 때 일어나 장기집권과 독재를 꾀했다. 우리나라의 예만 보더라도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계엄령 발령과 정권교체, 반정부 시위를 거듭했다. 1960년 4·19 혁명과 1961년 5·16 군사정변, 1979년 12·12 사태,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그 예다.
주목할 것은 당시 독재체제 하에서 억압이 따르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한국은 오늘날 보란 듯이 민주주의의 기틀을 갖췄고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는 것이다.
현재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당장은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성장의 도정이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재정권 붕괴에 이어 들어선 무능한 과도 정부, 더 나은 지도자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봉기 등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성숙해 나아가는 것 말이다. 국제사회가 이집트 사태에 섣불리 끼어들지 않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현재의 이집트 사태가 민주주의로 가는 성장통인지, 과거 독재 체제로의 후퇴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나일강을 젖줄 삼아 찬란한 역사를 꽃 피웠던 이집트. ‘나일강의 기적’이 다시한번 일어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