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변화의 가속도는 더욱 빨라져 제품과 기술시장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기술사도 꾾임없이 자기계발과 기술혁신을 이루어야 합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기술사 시험이 100회를 맞이한 가운데 첫 시험에 합격한 1호 기술사 김명년(82) 씨는 후배들에게 이 같이 당부했다.
김 기술사는 1964년 제1회 기술사시험에서 토목시공기술사를 취득하고 같은 해 철도기술사를 취득했다. 당시 철도는 최첨단 교통기술로서 기술사 응시자격도 경력 9년으로 제한됐다. 이론적인 학습 뿐만이 아닌 현장경험도 갖춰야 했다는 것이다. 그를 비롯해 1회 기술사 합격자들은 당대 최고의 전문가인 셈이다.
철도청에서 근무하던 김 기술사는 당시 첨단 기술과 현장 전문가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하게 된다. 철도기술사를 취득한 해 독일 방문에서 돌아온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 건설에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자본과 기술 모두 부족한 실정이었다. 이 상황에서 김 기술사는 최고의 현장 전문가로 경부고속도로 도상설계를 담당했다.
국내에서 많은 현장을 경험한 그도 경부고속도로의 도상설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 기술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전의 현장경험은 지금 생각해 보면 보잘 것 없었다”며 “도전정신 하나로 이론적인 부분을 실현시켜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관심은 알려진 것 이상이었다”며 “내가 도상설계를 하면 박대통령은 나와 함께 실제 헬기를 타고 설계구간을 점검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후 다시 철도청으로 복귀해 1970년대 서울 지하철 1호설 건설을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당시 서울에 인구집중이 심화돼 엄청난 교통난이 발생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지하철 건설 계획을 마련했지만 막대한 건설 자금과 함께 과연 우리 기술진만으로 건설하고 운영할 수 있는지 우려가 있었다.
이 같은 우려를 견디며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한 김 기술사는 “당시 우리나라 기술만 가지고는 어려운 실정이었다”며 “일본에서 발간한 책 한권을 갖고 시작했지만 우리의 기술력으로 건설된 지하철이 지금까지 운행되는 것을 보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