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만을 두고 보면 크레용팝의 성공은 한 마디로 ‘아마추어리즘’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프로페셔널이라면 어딘지 더 나은 것이고 좋은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만들지만 딱히 그런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콘텐츠란 소비되는 이들에 의해 평가받기 마련인데, 반드시 대중들이 완벽한 완성도를 가진 말끔한 콘텐츠만을 좋아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SM이나 YG 같은 대형 기획사에서 유명 작곡가와 프로듀서를 쓰고 완벽하게 콘셉트를 일치시킨 멋들어진 춤을 덧붙여 발표한 노래에 모든 대중들이 열광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대신 어떤 이들은 조금은 부족하지만 무언가 프로들이 보여주는 기성품과는 다른 투박한 매력의 음악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인디뮤직 같은.
크레용팝은 먼저 아이돌이라고 하지만 아이돌의 외양을 보여주지 않았다. 기존 아이돌, 특히 걸 그룹이라면 몸에 딱 붙는 레깅스나 속살이 적당히 비치는 섹시한 의상에 엉덩이를 흔들고 다리 라인을 강조하는 춤을 떠올리겠지만, 크레용팝은 정반대다. 머리에는 헬멧을 뒤집어쓰고 있어 여성스러움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고, 학생복을 연상시키는 스커트에 그것도 트레이닝복을 안에 받쳐 입었다. 그러니 이런 복장으로 섹시한 무대를 연출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이들이 추는 춤은 거의 과거 고 서영춘 선생이 했던 개다리춤 수준이다. 다리를 흔들어대고 춤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멋을 느끼기 어려운 동작들은 차라리 체조나 캐릭터 코스프레 동작을 연상시킨다. 노래는 가벼운 모던 락 계열의 발랄함을 보여주지만 역시 대단한 곡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딘지 아마추어 같은 그 느낌이 오히려 크레용팝의 성공에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이다. 직렬5기통춤이라 불리는, 어딘지 의도적으로 허술하고 웃음이 터지는 어색한 동작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더 친숙하고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의 앙증맞음으로 다가온다. 빈 구석이 많다는 것은 채워 넣을 구석도 많다는 이야기. 완전체인 기존 걸 그룹과 달리 크레용팝은 대중이 개입할 여지를 더 많이 갖게 만드는 불완전체다. 불완전한 아마추어리즘의 크레용팝은 이 시대의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크레용팝만의 특별한 현상일까. 그렇지 않다. 최근 2집으로 돌아온 버스커버스커를 보라. 음반이 발매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거의 음원차트를 독주하고 있는 수준이다. 1집과 비교해 평작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 버스커버스커에게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버스커버스커는 1집에서도 완전체를 지향하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장범준은 고음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으며 음악 스타일은 일관성은 있었으나 다채롭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단점들은 버스커버스커가 1집을 발표하면서 모두 장점으로 바뀌었다. 고음이 올라가지 않아 내는 장범준 특유의 가성은 오히려 매력으로 전환됐고, 다채롭지 못하다던 일관된 밴드 스타일은 버스커버스커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개성이란 단점에서 나오는 것이다.
크레용팝과 버스커버스커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제 완전체의 프로페셔널만큼 불완전체의 아마추어리즘이 점점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것은 대중들이 대중문화의 소비는 물론이고 생산의 주체로 점점 참여하려는 욕구가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YG 같은 거대 기획사가 왜 ‘WIN’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연습생들을 참여시키겠는가. 그것은 기획사가 완전하게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콘텐츠에 이제 대중들이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YG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콘텐츠. 그것이 이제 앞으로 대중문화 콘텐츠의 새로운 향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흐름 속에서 아마추어리즘은 점점 부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