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요구는 원격의료 도입 등을 규정한 의료법 개정안 철회와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 허용을 골자로 하는 경제활성화 대책에 대한 재검토다. 원격진료의 경우 큰 병원에 환자가 몰리게 돼 동네병원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고, 병원의 영리사업은 ‘의료 민영화’ 수순으로 환자의 부담을 키운다는 논리다.
그러나 원격진료는 도서지역 주민이나 거동이 불편한 만성 질환자 입장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동네병원 살림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하지만 이 때문에 꼭 필요한 이들에게 간편하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에도 이를 포기하라는 건 억지에 불과하다.
병원이 숙박시설 등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의료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인데, 이를 두고 의료 공공성을 포기한다고 하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넘보는 우리나라 경제가 성정해 나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대외의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내수 활성화이고, 가장 시급한 게 내수의 큰 축을 차지하는 의료서비스 분야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이다.
의료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미 의료의 국경은 사라진 지 오래고, 환자 유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이번 대책은 오히려 독려할 일이다.
의사들은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한 파업은 정당화될 수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도 없다. 차라리 엉뚱한 트집을 잡기보다 의료수가(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비용) 체계를 개선하자고 솔직히 터놓고 제안하는 쪽이 바람직하다. 보험료 상승 등 국민적 부담이 따르더라도 수가 문제를 현실화하는 방안을 정부와 함께 모색해 보기를 바란다.
한편에서 의료비 상승 논란을 부추기는 정치권의 언행도 자제돼야 한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최근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공성은 외면한 채 의료를 돈만 더 벌면 되는 산업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것은 천민자본주의 발상”이라며 “의료 영리화는 필연적으로 국민이 부담해야 할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의료 민영화’를 바탕에 두고 있지만, 건강보험과 급여지정 제도가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의료 민영화는 쉽게 이뤄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마치 정부가 금방이라도 의료 민영화를 시작할 것처럼 사건을 오도하고 여론을 흔들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