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순 사망. 12일 각종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로 갑자기 부상했다. 네티즌과 사람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이 증폭된다. 김갑순의 실체에 대해. 너훈아로 알려진 모창가수 본명이 김갑순이라는 사실을 접한 이들의 반응은 참 다양하다. “구성지게 노래 잘하는 가수” “나훈아 짝퉁가수”부터 너훈아 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누구지”에 이르기까지.
너훈아 아니 김갑순은 지난 12일 간암으로 숨을 거뒀다. 김갑순이 아닌 너훈아로 살아온 20여 년의 삶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의 나이 57세였다. 지난 2년간 간암 투병을 하면서도 밤무대와 행사에서 음악에 대한 애정을, 무대에 대한 열정을, 가수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그였다. 하지만 너훈아는 대중의 찬사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무관심속에 이 세상을 떠났다. 죽어서야 비로소 본명 김갑순으로 대중과 만났다.
너훈아의 죽음은 대중문화에서 하나의 영역을 구축하며 활동하지만 음지의 버려진 사람 취급받는 이들에게 눈길을 돌리게 한다. 그들은 짝퉁이라는 모멸감을 안고 사는 ‘모창가수’, 배우이면서도 연기자 취급 못 받는 ‘재연배우’, 소품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엑스트라’들이다.
너훈아, 나운하, 니훈아, 나운아, 조형필, 조영필, 태지나, 태쥐나, 패튀김, 밤실이…대중음악계에 한자리를 차지하며 노래와 무대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모창가수들이다. 나훈아, 조용필, 패티김 등 유명 스타의 음악과 가창스타일, 외모의 닮은꼴을 유지하며 모창 하는 이들은 오리지널 가수와 색다른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대중에게 선사한다. 너훈아는 지난 12월 24일 암 투병으로 숨조차 쉬기 상황인데도 한 복지관에서 그를 찾자 링거를 꽂은 채 무대에 올랐다. “진짜 나훈아는 이런데 못 오니 나를 보며 대리만족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너훈아의 이 말은 모창가수의 존재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짝퉁”이라며 무시했다.
연기자인데도 제작진과 대중으로부터 배우라고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재연배우라는 이름으로 대중과 만나는 이들이다. 예능이나 교양 프로그램에서 한 사람의 삶과 화제나 문제가 된 사건, 상황 등을 재연하는 재연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달픔의 등가물이다. “재연 연기만 해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드라마 엑스트라로 출연한다. 한 방송사 조연출이 대사가 몇 마디 있는 연기를 해달라고 해 가슴 설레며 밤 12시 현장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대사가 없어졌다고 해 돌아왔다. 현장에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한 재연 배우의 하소연은 이 땅에서 재연배우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연 배우의 고단함과 멸시는 때로 지난 2007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재구씨처럼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다.
우리는 엑스트라라고 부른다. 그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지만 소품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수만명의 엑스트라가 한 시간에 5000원을 벌기위해 지방을 다녀야하고 탈의실이 없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한다. 출연을 알선하는 일부 기획사의 부당한 처사와 불법적 대우도 감내해야한다. 잉여인간 취급하는 대중의 시선도 참아내야 한다. “날 단단히 갖고 놀았다. 더 이상 살아 뭐 하겠니.” 지난 2009년 보조출연자 관리 기획사 반장들로부터 성폭행당했다며 보조출연자 양모씨(여, 34)가 자살을 했다. 엑스트라가 처한 현실의 일부를 드러낸 사건이다.
대중의 사랑과 엄청난 수입,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나훈아도 있어야하지만 서민과 대중에 대리만족과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너훈아도 있어야한다. 극을 이끌어가는 장동건과 전지현 등 스타만 있어서는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수 없다. 엑스트라의 존재가 더해져야 작품이 완성된다.
모창가수, 재연배우, 그리고 엑스트라로 불리 우는 이들은 대중에게 그리고 대중문화에서 나름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이들은 정당한 대우는 고사하고 멸시와 무시, 불법과 차별, 편견 속에 살고 있다. 너훈아는 부디 하늘나라 무대에선 짝퉁이라는 멸시 받지 않고 김갑순이라는 본명으로 지상에서 못다 푼 가수의 열정을 펼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 땅의 모창가수, 재연배우, 엑스트라에 드리워진 편견과 차별, 그리고 부당한 대우가 사라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