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은행권, 대기업 이름값에 홀린 처참한 댓가 -박선현 금융부 기자

입력 2014-02-0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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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중소기업에게는 그렇게 깐깐한 은행이 대기업도 아닌 그 계열사에는 돈을 퍼줬네요. 불신만 쌓여갑니다.”

KT 자회사 직원의 2800억원 사기대출 기사를 본후 SNS상에 올라온 글이다. ‘대출 서류상으로는 완벽했다’라는 은행권 항변에도 네티즌들은 하나, KB국민, NH농협과 10곳 저축은행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있다. 개인정보 관리에 이어 대출심사 시스템에도 구멍이 뚫렸다며 은행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대기업 이름값을 맹신한 처참한 결과다. 은행들은 한 해 순이익이 50억원도 채 되지 않는 중소기업에 적게는 100억원에서 많게는 1600억원까지 선뜻 돈을 내어 줬다. 총 대출잔액으로 따지면 KT ENS(200억원)와 주식회사 N(100억원) 자본금을 합친 돈의 10배에 달한다.

이 마저도 금감원에서 발표하기 전까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아직 조사가 진행중이지만 수년간 이어진 대출사기란 점에서 피해 규모가‘조(兆)’단위에 버금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모든게 KT ENS가 KT의 자회사란 점에서 시작됐다. 은행들은‘문제가 생기면 KT에서 대출금을 상환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지만 자본금으로는 상환 능력이 부족한 소형사에게 대기업 이름 하나만을 믿고 돈을 빌려준 것은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셋값을 고민하는 서민들, 유동성에 목말라 하는 중소기업 사장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다.

금감원은 전 금융권을 대상으로 매출채권 담보대출 실태 조사를 나설 예정이다. 피해규모가 눈덩이 처럼 불어날 것이란 우려감이 커

지고 있지만 맞을 매였다면 맞고 지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대기업(계열사)을 맹신하는 은행들의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은행권의 보다 철저하고 공정한 대출 심사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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