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빅토르를 통해 본 이기심, 우리 사회 현주소 [이꽃들의 36.5℃]

입력 2014-02-1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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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현지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팰리스에서 열린 남자 쇼트트랙 1000m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고 빙상장에 입을 맞추는 안현수.(사진=뉴시스)

15일 안현수가 차가운 빙판 위에 뜨거운 키스를 안겼다.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경기에서 금메달을 거머쥐고야 만 그는 낯선 이름, 빅토르 안이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같은해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에서 각각 3관왕, 2관왕을 차지한 안현수는 빙상연맹의 패권으로 불거진 한체대, 비한체대 간 파벌싸움의 피해자로 무릎 부상과 겹쳐 더 이상 국가대표로서 빙판 위에 설 수 없었다. 국내서 잠시 쇼트트랙 경기 해설위원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던 그는 다시 한 번 금빛 도전을 위해 올림픽 행보에 나섰다.

그리고 러시아로 떠났다. 빅토르라는 이름을 택한 채. “귀화를 준비하며 알게 된 빅토르 최를 기리기 위해 빅토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러시아를 선택한 그의 발걸음은 “안 보낼 수만 있다면, 현수 자신도 ‘안 갈 수만 있다면’ 했다”라는 황익환 전 성남시청 코치의 말처럼 아쉬운 마음으로 내몰린 것이었다. 이번 금메달 수상 후, 안현수는 “이날을 위해 눈물을 참았다”고 했을 만큼, 비장한 각오를 마음에 품었다. 그런 그가 러시아행에 더불어 빅토르란 이름을 택한 데는 러시아의 전설로 남은 록가수 빅토르 최의 존재가 유효했다.

러시아의 전설로 남은 록가수인 빅토르 최(1962.6.21~1990.8.15)는 록밴드 키노(Kinoㆍ영화)를 결성, 자유와 변혁을 꿈꾸던 옛 소련의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시적인 노랫말로 투지를 불태웠고, 저항을 담아낸 그는 대표곡 ‘Группа крови’(혈액형)으로 소련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이대우가 저서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빅또르 최의 삶과 음악’에서 빅토르 최가 이끈 밴드 키노의 노래가 소비에트 해체의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빅토르 최는 급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28세의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했고, 이후 그의 죽음에 대한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 소련 전역의 도시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겨났고, 2002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스크바 예술광장 아르바트에 빅토르 최를 기리는 ‘추모의 벽’을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그를 추모하는 젊은이들이 여전히 모여들어 붐비는 그 곳에선 러시아인의 가슴 속에 남은 가수이자 배우였던 빅토르 최의 문화유산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빅토르 최(사진=뉴시스)

우리는 위대한 가수로 추앙받는 빅토르 최가 우크라이나 태생의 러시아인 어머니와 고려인 2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그의 아버지는 까레이스키로 불리는 고려인으로, 옛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우즈벡키스탄 등으로 쫓겨났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춥고 시린 땅으로 쫓겨와 모진 일생을 살았던 선조의 역사 그리고 낯선 땅에서 뿌리내리고 버텨왔던 후손의 삶이 뼈아프게 느껴진다. 또, 일제시대 강제노역을 이유로 일본으로 쫓겨갔으나, 갖은 차별에 시달리며 지금의 생명력을 일궈온 자이니치(재일조선인)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힘없던 나라가 지켜내지 못했던 국민들이었으나, 나라가 힘을 가진 후에도 철저히 외면 받아온 이들이다. 여전히 한 많은 삶을 버텨낸 선조들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또 한 사람, 나라로부터 외면 받은 제2의 빅토르가 있다. 기득권 다툼으로 얼룩진 파벌 싸움의 희생양 안현수는 러시아로 내몰렸다.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가 “그 누구 하나 안현수를 붙잡지 않았고,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고 밝혔듯, 빙상연맹의 어리석음과 이기심은 맹비난의 대상이 돼 마땅하다.

우리 사회는 오랜 세월 외면으로 일관해온 주변부의 문제나 이해관계를 앞세운 편가르기 등 이기심으로 촉발한 불평등을 해소해야할 때다. 양극단으로 향하며 분열을 낳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현상들에 직시해야한다.

우리는 불모지에서 외따로 오늘날을 일궈온 빅토르 최와 같은 까레이스키와 그 후손들의 삶에 얼마나 주목했던가. 그리고 외면과 따돌림, 박해가 낳은 이들을 포용할 품이 있었던가. 결국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새 전성기를 연 안현수를 잃고, 그는 품을 떠났다.

‘빅토르의 노래가 들린다. 싸늘한 그의 무덤 앞에 더 많은 빅토르가 모여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다. 지금도 그의 노래가 끝나지 않은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YB - ‘혈액형’ 내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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