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직원이 5년간 허위 서류 발행…KT 정말 몰랐나

입력 2014-02-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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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대출사기 ‘6대 의혹’…SPC 실체·은행권 여신 부실관리·대출금 사용처 등 의문

5000억원대 대출사기 사건에 대한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 경찰이 최근 핵심 용의자를 검거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의문점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이에 본지는 이번 대출사기 사건과 관련한 풀리지 않는 ‘6대 의혹’을 짚어봤다.

◇ KT ENS, 매출채권 발행 정말 몰랐나? = KT ENS 직원 김모 부장이 협력업체들과 공모해 허위 매출채권을 발행하는 동안 경영진 등 내부에서 정말 몰랐을까 하는 것이다.

김씨는 2008년부터 최근까지 100여 차례에 걸쳐 8개 협력업체가 은행 13곳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서류를 위조해 허위 매출채권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KT ENS 측은 김씨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사 직원이 장기간 거액의 범행을 몰랐다는 것은 의문점이다. KT ENS 측은 금융권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KT ENS 관계자는 “은행연합회에 지급보증 내용을 확인한 결과, 본건 관련으로 KT ENS의 지급보증은 없는 것으로 확인된 것은 금융기관에 문제가 있다”며 “2006년부터 외부감사인을 통해 내부회계관리 점검을 받았고 감사 결과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회사 측은 매출채권에 들어간 법인 인감도장이 위조됐다고 주장했다. 매출채권에 들어가는 법인 인감은 사용할 때마다 일일이 내부 결재를 받고 기록을 남기게 돼 있다. 만약 KT ENS가 관리 소홀로 사고가 발생했다면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 외담대 받아 5000억 대출받은 SPC 실체는? = 자본금이 수십억원 수준인 협력업체들이 거액의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여러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KT ENS에 납품한 것처럼 꾸민 가짜 매출채권을 SPC에 모두 양도했고 SPC는 양수받은 매출채권을 은행에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아갔다. 매출채권이 SPC에 모두 양도됐기 때문에 협력업체들은 은행의 검사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협력업체들이 설립한 SPC는 현재까지 중앙스타, 세븐스타, 은하수제일차, 은하수제이차, 쏘울앤스마트 등 총 9개로 이 중 하나·농협·국민은행 등 3개의 시중은행이 대출을 해준 SPC는 5곳, 저축은행과 거래한 SPC는 4개다. 조사 과정에서 추가 SPC가 발견되면 대출사기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

NS쏘울F&S가 세운 중앙스타·은하수제일차·은하수제이차 등 3개의 SPC는 하나·국민·농협은행에서 총 330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2010년 설립된 NS쏘울F&S는 자본총액이 고작 1000만원에 불과하다. 또 중앙티앤씨 등 3개 업체가 설립한 SPC인 세븐스타는 하나은행에서 600억원을 빌렸는데 중앙티앤씨의 자본총액은 24억원밖에 안 된다.

일각에서는 이들 SPC가 설립이 쉽고 금융당국의 규제를 피해 갈 수 있어 금융사기에 자주 이용된다고 지적한다. SPC는 상법상 자본금 5000만원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또 법인 설립자가 원할 때만 금융위원회에 등록하도록 돼 있어 사실상 감독당국의 사각지대에 있다.

◇ 은행 여신심사시스템 어떻길래 = 이번 사건으로 은행의 여신심사 시스템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사건에 연루된 협력업체들은 지난 2008년부터 조직적으로 대출사기를 감행해 왔지만 시중은행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여신심사의 기본만 지켰더라도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인 만큼 일각에서는 은행 내부에 공모자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은행들은 NS쏘울 등 협력업체가 만든 SPC가 KT ENS가 발행한 매출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해줬다. 하지만 해당 매출채권은 조작된 서류였다.

그러나 허위 매출채권 발행은 의외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공시 자료를 보면 KT ENS의 휴대폰 판매 관련 매출은 2011년과 2012년 각각 400억원에 불과했다. 2013년에는 휴대폰 관련 매출이‘제로’였다. 사업보고서만 봐도 KT ENS의 휴대폰 판매사업은 소규모인 점을 알 수 있다. 은행들이 김모 부장 외 KT ENS 직원과 해당 거래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통상 여신심사는 여신 대상, 한도, 담보, 대출 절차 등의 적정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구조화 여신의 문제점을 간파하기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구조화 여신의 경우 대출 대상이 중소기업 1곳이 아니라 이들이 모인 SPC라 위험 부담이 줄고 이자 연체도 없어 의심을 피해 갈 수 있었다.

◇서정기·전주엽 등 3000억원 대출금 사용처 풀리지 않은 의문들 = 협력업체들의 대출금 사용처에 대한 의문점이 증폭되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협력사 대표들은 불법 대출금이 서정기 중앙씨앤씨 대표와 전주엽 NS쏘울 대표에게 흘러들어 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들이 3000억원의 불법대출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16일 검거된 서 대표는 경찰 조사에서 “대출금 중 약 600억원을 서울 목동 소재 7층 건물 구입에 쓰는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며 “그중 일부는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가족들의 생활비와 관련 업체인 다스텍의 지분을 인수하는 데 썼다”고 말했다.

취재 결과 목동 소재의 빌딩은 20억원, 다스텍 지분 인수에 20억원밖에 들지 않았다. 해외에 있는 가족들의 생활비로 나머지 560억원을 썼다는 것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불법대출금 3000억원 중 2400억원은 뉴질랜드로 도피 중인 전 대표가 쥐고 있다.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전 대표는 명품시계 수십 개와 외제 스포츠카 여러 대를 보유하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전 대표는 2008년부터 최근까지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의 명품 시계 사진 수십 장을 올렸다. 2008년은 그가 KT ENS 김모씨와 함께 불법 대출을 받기 시작한 시기다. 경찰은 자금이 해외로 유출됐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해외 법인과 해외계좌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 회계법인 뭐했나 = 은행들이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관리를 부실하게 운영한 점도 문제를 키웠다. 피해를 본 은행들은 정상적 거래관계에 따른 대출채권인지 실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세금계산서 등 관련 서류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다.

피해 규모가 가장 많은 하나은행은 대기업의 담보만 믿고 서류에만 근거해 작업을 한 탓에 이상징후를 감지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대출의 근거가 되는 외상매출담보채권이 정상거래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 회계법인을 통해 전수조사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매출채권과 세금계산서가 수기로 발행됐고 매출채권이 SPC에 양도됐다는 부분 등 통상적 금융 거래와는 다른 이례적 방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수기로 된 서류는 조작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최근 전자매출채권, 전자세금계산서만을 증빙으로 사용하고 있다. KT ENS의 경우 2011년 이후에는 수기로 된 세금계산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사법당국 수사 지지부진…왜? = 경찰 수사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사법당국은 이번 사건을 조사 중이지만 종합적인 검토를 거친 후 수사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이번 사태의 시발점인 BS저축은행을 비롯해 사건에 연루된 은행들의 관련 자료를 모두 검찰에게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가 진행 중이며 종합적인 검토를 거쳐 수사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만 설명했다. 경찰은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핵심 용의자인 전 대표도 아직 검거하지 못한 상태다.

경찰은 그동안 은행들로부터 받은 자료와 서정기 중앙티앤씨 대표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스마트산업협회 압수수색 자료를 대조하는 작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이번 사건의 공범들을 검거하는 데 주력해왔다”며 “전 대표 신병 확보에 주력하면서 그동안의 자료들과 사기 정황을 다각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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