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을 속이고 내기 바둑을 둬서 수 억원대의 돈을 잃었더라도 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수원지법 형사11단독 민병국 판사는 6일 실력을 속이고 내기바둑을 둬 수억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장모(73)씨 등 4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장씨는 바둑 실력이 뛰어난 백모(61)씨 등과 함께 내기바둑을 좋아하는 재력가 김모(68)씨에게 “실력이 비슷하다”며 접근해 2007년 9월부터 2010년 4월까지 41차례에 걸쳐 회당 판돈 100만∼300만원의 내기바둑을 둬 2억4000여만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민 판사는 판결문에서 "개인의 바둑실력(치수·실력이 낮은 쪽에 주어지는 이점)은 객관적 기준이 없어 등급화하기 어렵고 주관적 평가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다 치수 조정 등 도박의 조건을 설정하는 당사자 사이의 조치는 흥정의 결과이므로 이를 속이는 기망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는 돈을 잃고도 계속 바둑을 두면서 치수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정하기도 했고 바둑의 속성상 상대방에게 실력을 오랜 기간에 걸쳐 속이기 어려우며 피해자를 속이는 수법을 쓴 흔적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민 판사는 "설사 피고인들이 바둑 실력을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정도를 넘어 사기죄에서 말하는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