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당일. 동 트기 전 삼신상을 차리고 쭈니의 백일을 축하하며 쭈니의 아빠와 나는 축문을 읽어내려갔다. "젖 잘 먹고 젖 흥하게 점지해서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긴 명을 서리 담고, 짧은 명은 이어대서 수명 장수하게 점지하고, 장마 때 물 붇듯이 초생달에 달 붇듯이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게 해주십시오." 아이가 백일이 되기도 전에 생을 달리하는 일이 많았던 시절, 고비를 넘긴 일을 축하했던 백일은 지금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무병장수를 비는 마음은 그 옛날 부모의 마음과 다를 게 없다. 백일을 맞아 아이가 탄생한 감동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앞으로 맞이할 삶도 함께 응원했다. 백일은 탄생의 기적을 되새기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에게는 백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다. 백일을 기점으로 엄마가 아기를 돌보는 일이 이전에 비해 수월해진다는 의미다. 기적이라고 부를 만큼 산모가 아이를 돌보는 일이 녹록지 않음을 짐작하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낮잠 시간이 짧고 누워 자지 않으려는 쭈니가 백일 후에 달라질 거라며 내게 기적을 기대하게 했다.
110일 전후인 듯 하다. 쭈니는 한밤 중 1시간에 한 번씩 울면서 깨기 시작했다. 심하게는 30분에 한 번씩 나를 괴롭혔다. 지난 두 번째 육아일기에서 언급했듯 생후 3개월 직전은 모유량이 급격히 줄어 상당한 스트레스에 휩싸인 시기여서 낮밤으로 진행되는 이중고에 육아의 기쁨은 온데간데 없었다. 쭈니는 기적이 아닌, 엄마를 기절케 한다는 신생아들 중 한 명이었다. 기대와 실망의 간극은 너무 컸다.
임신 중 16㎏가 쩠던 몸무게는 17㎏ 넘게 빠져가고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도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못했던 의지박약 엄마지만 이런 고문식 다이어트는 정말 못할 짓이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는 탓에 온 종일 제 정신이 아니니 아무 근거도 논리도 없는 짜증과 혼잣말이 늘어갔다. 백일 축문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잠을 청하기 위해 눕는 순간이면 '오늘은 또 몇번이나 깨려나...아...제발...엄마 좀 살려줘...'라는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그 두려움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3개월이 끝난 날 풀어버린 속싸개로 다시 꺼내 단단히 감싸보고, 아기 침대가 아닌 곳에서 재우며 환경도 바꿨다. 포만감을 위해 밤엔 분유수유로 바꾸기도 했다. 인터넷 정보도 수없이 들여다 봤다. 어쩌다 밤 중에 한 번 정도만 깨어나며 내게 달콤한 숙면을 선사했지만 이런 일이 가뭄에 콩나듯 드문데다 랜덤으로 일어나니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참을 인'자를 가슴에 새기며 잠과 사투를 벌이는 밤들은 너무나 깜깜하고 길었다.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이었을까. 쭈니의 이런 상태는 두달 정도 지속된 후 멈췄다.
백일이 모세가 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쭈니는 여전히 자라고 있다. 당시 몸무게는 태어날 때보다 2배, 키는 11cm 자랐다. 발놀림과 버둥거림은 마치 호날두와 메시의 발재간처럼 활발하고 거침이 없었다. 목을 가누고 난 뒤 120일 경 뒤집기도 시작했다. '깔깔깔' 개구쟁이처럼 웃는 일도, 엄마 아빠와 한참동안 눈을 마주하는 일도 많아졌다. 바운서에 앉아 애벌레 인형과 씨름하는 날이 부쩍 늘었고 옹알이를 넘어 우렁차게 소리까지 지르니 귀가 따갑다 못해 시끄럽기까지 했다. 열 달을 웅크리고 지내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올챙이는 그렇게 개구리의 모습을 찾아갔다.
백일의 기적을 뛰어넘는 기적. 그 작은 변화의 모든 순간이 기적이었다.